희랍어 시간, 한강 장편소설, 창비 발간, 2024. 194쪽
화자가 중간에 계속 바뀌고 시제도 자주 바뀌다보니 자꾸 앞으로 가서 다시 읽어보고
하면서 감을 잡는게 조금 시간이 걸렸던 소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독후감까지는 아니어도 소감 정도를 어떻게 써야할지 주춤거리게
된다. 한강 작가의 특유의 소설 작법이라고 할까 나오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다른 스토리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헷갈리기도 하고 아무튼
본다는 것과 말한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가 아주 만만하지 않다.
소설로서는 복잡한 줄거리도 아니지만 그 철학적 주제가 인상적이다.
인터넷 어딘가에 있는 작가의 인터뷰가 소설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는데 도움이
되어 여기 옮긴다.
또 하나..역시 한강 작가의 시적인 산문 문체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희랍어시간』(2011)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희랍어 강사이고 말을 잃어버린 여자는 그의 수강생이다.
하나의 기관이 제 역할을 잃어가면, 다른 기관들이 그만큼 예민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가, 문장이 한껏 예민해져 있다. 그 둘은 어떻게 서로 인식하고
서로에게 다가갈까. 두 눈으로만 읽어내려 갈 문장이 아니다.
한 교실 안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 사는 두 사람 사이에는 희랍어가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되고 단단한 문자.“8년 전쯤 희랍어 철학을 하는 분을
만났어요. 고대 희랍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학문인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함축적이다 보니 어순을 마음대로 쓴다는 거예요. 한 단어 안에 문법이
다 들어가 있어서 굳이 어순을 다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요.” 희랍어 문법은
규칙이 대단히 까다롭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면밀한 규칙 덕분에 오히려 문장들은 간명하다. (p.20)”
소설의 문장도 희랍어를 닮아있다.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다.
“최대한 정확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려고 하는 말, 쓰려고 하는
분위기를 정확하게 옮기려고 하다 보니 행간을 띄우기도 하고, 이탤릭체로
기울이기도 했어요. 정황과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려는 실험적인 시도였어요.”
말과 빛을 잃어가는 사람을 그려내기 위해 그녀는, 인물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써나갔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사람에 대해서 늘 생각했어요.
불투명한 비닐을 눈에 대고 있어보기도 하고요. 그분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염려도 되고,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말 잃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세세한 감각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무언가 잃어가는, 잃어버린 인물들이지만, 삶은 계속된다.
“생명은 소멸에 저항하잖아요. 손톱 자르다 살을 자르면, 잘린 살점은 금방
썩어버리지만, 피가 흐르는 손은 썩지 않잖아요. 그런 생명과 소멸의 관계.
침묵과 말의 관계. 아주 긴밀하면서도, 서로 싸우는 그런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안에서 어둠 속에 목소리만 남은 사람과 말을 잃었다가 찾는 사람의
이야기는 제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거죠.”
인터뷰 초입에서 한강 작가는 이 소설 역시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계속 살아야 하는 거라면, 그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인간의 연한 부분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고 할까요. 두 인물이 구원 없는
세상을 살았잖아요. 서로 마주치는 순간, 소통할 때 자신의 가장 연한 부분을
꺼내잖아요. 손바닥에 글씨를 써준다든지, 서로 침묵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인간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그 연한 부분에서 삶을 시작되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
유투브에 이 소설에 대해 여러 사람이 올려 놓은 영상이 있는데 이 영상이
비교적 흥미있게 잘 분석하고 있다는 생각에 옮긴다.
Google Gemini 에게 이 소설의 문학적 의미를 물어보니 아래처럼 대답한다.
새삼 인공지능 이제 초기 단계인데도 이렇게 요약하다니..
---------------------------------------------------------------------------------------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 속 희랍어 강의는 단순한 언어 습득의 장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작가는 다양한
문학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1. 시간과 언어, 그리고 존재의 의미
- 시간의 유한성과 언어의 한계: 소설 속 인물들은 삶의 종말을 앞두고 희랍어를 배우며 시간의 유한성과 언어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희랍어는 단순히 외국어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싶은 아름다움과 지혜를 상징합니다.
- 언어를 통한 소통과 단절: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만, 동시에 언어의 한계로 인해 고립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희랍어는 이러한 소통과 단절의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매개체입니다.
2. 죽음과 삶의 의미
- 죽음 앞에서의 성찰: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을 앞두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희랍어 강의는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 삶의 연속성과 단절: 소설은 삶과 죽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희랍어는 이러한 삶의 연속성과 단절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3. 고독과 연결
- 고독 속에서의 성장: 소설 속 인물들은 고독을 통해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성장합니다. 희랍어 강의는 이러한 고독 속에서의 성장을 돕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 다른 존재와의 연결: 소설 속 인물들은 희랍어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합니다. 희랍어는 고독을 극복하고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수단이 됩니다.
4. 기억과 망각
- 기억의 소중함: 소설 속 인물들은 희랍어를 배우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통해 자신을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희랍어는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매개체입니다.
- 망각의 의미: 소설은 망각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희랍어는 망각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5. 문학적 특징
- 섬세한 심리 묘사: 한강 작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이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하도록 합니다.
- 시적인 언어: 소설은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희랍어라는 특수한 언어는 소설의 시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합니다.
-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 소설은 죽음과 삶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를 촉발합니다.
결론적으로, 『희랍어 시간』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희랍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간, 언어, 죽음, 삶, 고독, 연결, 기억 등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책(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 ) 과학을 보다 (4) | 2024.11.18 |
---|---|
( 책 ) 검은 사슴 (4) | 2024.11.13 |
( 책 ) 흰 (7) | 2024.10.22 |
( 책 ) 채식주의자 (6) | 2024.10.20 |
( 책 ) 소년이 온다 (0) | 2024.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