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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write and draw to empty my mind and to fill my heart ..
전시회(Exhibition)

( 전시회 ) 정해숙 11회 개인전( I )

by ts_cho 2022. 9. 14.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인사동 갤러리 인사아트에서 아내의 제 11회 개인전이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오픈 행사와 함께 전시장 장면들은 사진 찍어 다시 올리기로 하고 간단하게 전시회 메일을 옮깁니다.

혹시 전시 기간 중에 인사동 오실 일이 있으시면 한번 들러 작품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투영(주님의 시간, KAIROS)III_130.3x130.3cm_oil on anvas_2022

정해숙, 깨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구도적 작가의 길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로 잘 알려진 C.S 루이스(C.S. Lewis)가 어느 날 어두운 공구실에서 문 위 쪽에 난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구실은 거의 칠흑처럼 깜깜했으나 햇살이 들어오는 곳만은 밝게 빛났다. 루이스가 햇살 쪽으로 걸어가 그 햇살에 눈을 갖다 댔더니 그전까지 보이던 광경이 모두 사라지고 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푸른 나뭇잎과 그 너머 1억4천4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이 보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떤 것을 관찰하는 것과 더불어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게 해준다.

정해숙은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사물의 형태와 종류가 어떤지 구별하는 것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부적 경험을 통하여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자연의 관찰에서 길어올려진 것이 물리적 현상과 가시적인 차원에 머문다면 초자연적 경험에서 길어올려진 것은 대상을 ‘불가견(不可見)의 메타포’ 또는 ‘상징’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말은 예술 행위란 단순한 재현이나 지식의 자랑이 아닌,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예술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원적 갈망이 담겨 있다.

투영(천상의 노래)XIV_130.3x162,2cm_oil on canvas_2020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정해숙은 ‘공구실 틈새 너머의 빛’을 탐색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참된 것은 무엇이고 어떤 삶의 형태를 가져야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한 추구를 이어왔다. 이는 고흐(Vincent van Gogh)와 루오(George Rouault), 마네시에(Alfred Manessier)와 같은 구도적 작가들이 걸어간 길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이미 이전에 열린 개인전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그러한 입장이 부상된 것은 2002년 인사갤러리의 개인전과 2005년 인사아트센터의 개인전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 후에 가진 CJ 갤러리(2006), 인사아트센터(2006),러시아 작가연맹갤러리(2007), 서울미술관(2008), 밀알미술관(2012), 갤러리 이즈(2015)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가는 순도 높은 투명성을 지닌 회화를 선보이면서도 한 방향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정해숙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작품양식은 섬세하면서도 명료성을 지닌다. 소단위의 무수한 색면(色面) 분할로 시각적 효과를 일으키고 중첩된 색면은 내재적인 리듬과 함께 환영적인 공간을 낳는다. 물론 이런 공간은 단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누적과 치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은 면들을 아주 곱고 가는 세필을 사용하여 몇 번이고 덧입혀서 성형한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정해숙은 기하학과 면을 이용하면서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일반적인 추상작품과 다른 점은 뚜렷한 암시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얀 새가 창공을 가르며 춤추고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과 십자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찬란한 빛 등 암시적 이미지들을 화면 곳곳에 장치해놓았다. 그가 암시하는 것은 기독교 영성과 관계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장차 다가올 세상을 흐릿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

투영(천상의 노래)XVI_72.7x91.0cm_oil on canvas_2021

 

주요 작품

정해숙의 작품에서 마주하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드넓은 창공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결 등의 이미지는 그의 해외 체류와 연관이 있다. 작가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수년간 거주한 적이 있다. 주말이면 인근에 있는 바다로 나가 배를 탔는데 거기서 접한 남태평양의 바다와 파도의 출렁임, 새파란 하늘이 그의 작업에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작가는 열대지방의 호숫가를 산책하며 날아오르는 하얀 백조와 학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환희와 벅찬 마음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가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여유와 행복감을 누렸다. 그의 그림을 밝게 물들이는 코발트 블루, 터키, 에메랄드, 바이올렛 색상들은 열대의 자연을 연상시키며 싱그러운 아름다움, 생명의 호흡을 읽게 해준다. 순도 높은 색상과 빛이 반사될 때의 찬란함은 이때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아름답고 광대한 이 세상을 그 광채의 무한한 힘에 압도당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일종의 거울이요 거울로밖에는 볼 수 없는 창조주의 솜씨를 정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칼뱅(John Cavin)은 “눈을 어디로 돌리든 이 세계에는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의 섬광이 빛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의 경우가 꼭 그런 셈이다. 화면 속에 새가 나르고 빛이 산란하며 아우라가 공명하는 듯한 이미지를 하고 있는 것은 실재의 거울같은 것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연은 단순한 감상대상이 아니란 긍극적 실재의 메타포로 인식하고 있고 이같은 자연에 대한 시각을 바탕으로 작품을 전개해가고 있다는 점을 특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투영(천상의 노래)XVII_60.6cm in diameter_oil on canvas_2022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테마로 한 작품도 엿볼 수 있는데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평화롭게 살아가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정신적인 공포와 경제적,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받는 괴로움과 고통”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림에는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깔인 옐로우(레몬 옐로우)를 화면 중앙에 위치시키고 주위에 블루(파탈로 블루)를 배치하여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이웃을 잃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위로를 나타냈다. 또 화면 상단에 찬송가 “주 음성 외에는”의 악보 앞부분을 넣어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어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다른 한 점은 <투영 - 주님의 시간 Kairos>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19를 맞으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회복을 염원하고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상기하면서 제작한 것이다. 이 재난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는데 작가는 이런 재난을 보면서 카이로스(Kairos)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카이로스의 시간개념은 그림도상속의 시계와 비교하면 명확하다. 그림속의 시간은 우리 인간들이 편리를 위해 개발한 것이며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 반해 카이로스는 선형적이고 양적인 개념의 크로노스로는 측정되지 않는 질과 의미의 관점을 뜻하는 시간개념을 일컫는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는 그 분의 섭리에 기초하며 피조물인 인간은 그 때를 알지 못한다. 전도서 3장 11절에는 이점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고 밝히고 있다. 화면 상단의 악보는 주님의 시간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하리라는 내용의 찬송가 “주님의 시간에”를 그려 넣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악기로 표현하였다.

 

투영(주님의 눈물- 베데스다)XIII_91.0x91.0cm_oil on canvas_2018

<치유 - 베데스다>는 38년간 중풍병을 앓은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것을 테마로 하고 있다. 그림은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구별되는데 하단의 네모꼴 안의 동그라미는 그곳이 베데스다 못임을 나타내고 로마자 ‘ⅩⅩⅩⅧ’ 은 병자가 중풍병을 앓은 기간을 표시한다. 반면 상단에는 장막 사이로 찬란한 빛이 비추는 사이 몇 마리의 새가 활기차게 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여기서 빛은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새의 이미지는 위로의 성령을 각각 표상한다.

이 작품은 작가 개인의 이야기와도 관련되어 있다. ‘베데스다’를 모티브로 삼게 된 데에는 작가 자신이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한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수술 후 경과를 보기 위해 병원을 오가면서 여러 가지 병으로 인해 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을 보았고 그들의 투병생활과 질고를 지켜보며 베데스다 못가에서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신 예수님을 떠올렸다. 화면에 조그맣게 그려진 동그라미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예수님의 긍휼을 보석처럼 형용한 것이다. 정해숙은 성경을 묵상하며 오늘의 ‘베데스다’에서 일어나는 아픈 자를 치유하신 그리스도의 돌보심을 그려낸 셈이다.

 

투영(주님의 눈물- 베데스다)XIV_91.0x116.8cm_oil on canvas_2022

<투명-생명나무>는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에 각각 등장하는 ‘생명나무’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큼직한 나무 한그루를 중심으로 주위의 여러 이미지들이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다. 말하자면 작가는 화면에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를 접목시켜 중층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나무에 달린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며, 나무기둥은 천국에 이르는 야곱의 사다리, 화면 하단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는 시냇물(시편 1:3)과 비옥한 땅을 나타낸다. 그림 상단에는 장막이 갈라지면서 광명한 빛이 쏟아지고 그 곁을 성령님을 상징하는 하얀 새들이 주위를 날고 있다.

좌측의 헌신의 항아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예수님께 올려드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곳곳에 ‘긁힌 흔적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 상채기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조형의 정확성과 명료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가에게 상채기를 남긴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것은 단순히 의도적인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리차드 해리스(Richard Harris)는 신의 영광은 실패와 치욕 속에서 완전히 현전되며 그것은 완전히 ‘감추어진 신의 영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는 예수님의 영광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으로 현현된다고 본다. 정해숙의 경우 땅을 상징하는 어두운 하단을 두텁고 거칠게 채색한 것은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의 고난과 질고를 가리킨다.

투영(주님의 눈물- 베데스다)XII_101cm in diameter_oil on canvas_2018

 

“고운 화면을 표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애쓰던 나는 몇 년전부터 화면의 부분들에 두터운 물감층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고난을 표현하고자 페인팅 나이프로 긁고 다시 칠하는 것을 시도하게 되었다. 하늘을 나타내는 하늘빛에도 나이프로 흔적을 표현하였고 제일 아래 부분에도 두터운 페인팅 나이프로 물감을 덧입혀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의 흔적을 표현하였다.”(작가 노트 중에서)

 

아름다움이 진실로부터 분리할 때 감상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렘브란트가 그의 예술에 있어 절정기에 있던 무렵 인물의 미화로부터 눈을 돌려 고난을 당하며 비천에 처한 인간을 그린 것은 아름다움이 더 높은 것, 즉 진실성을 간직해야하며 그렇지 않을 때 아름다움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정해숙의 회화는 피상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참된 아름다움을 향한 발걸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선진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찾았듯이 작가는 짓이겨진 물감을 통해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이 세상을 향한 섬김과 보살핌에 기초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투영(생명나무)III_72.7x72.7cm_oil on canvas_2017

 

함께 하는 삶

그의 근래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종교의 틀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베데스다’ 작품에서는 우리 시대에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소망을, ‘카이로스’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일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우크라이나’ 작품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 땅에 속히 종전과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물론 창조의 아름다움을 펼쳐내는 작품에서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망가진 생태계를 치유하자는 그의 ‘생명 돌봄’ 사상이 깔려 있다.

어떤 테마이든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자 공감이다. 이 공감의 출처를 작가는 성경의 신구약과 찬송가 등에서 착안하여 오늘날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향해 비추고 있는 셈이다.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말처럼 세상의 선을 자라나게 하는 일은 어느 정도 역사에 남지 않는 보편적 행위들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의 절반은 정해숙처럼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 사람의 덕분인지 모른다.

정해숙을 가깝게 지켜보아온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선량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 것이다. 한두 번이라면 모를까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것은 그 사람의 본질이 되고 만다. 그가 행한 것에 그 사람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생활의 측면에서 작품활동을 통해서나 세상을 좀더 낫게 만드는 일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것같다. 그같은 성품은 작품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고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의 예술세계는 사람들에게도 느리지만 꾸준히 영향을 주어 감상자들의 경험의 폭을 넓히게 할 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투영(기도)III_100x80cm_oil on canvas_2021
투영(예수님의 표적, The Sign of JESUS) V_60.6x72.7cm_oil on canvas_2021

 정해숙 | CHUNG HAE SOOK

 

홍익대학교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B.F.A / M.F.A) |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개인전 | 11회 | 가인화랑, 인사갤러리, 인사아트센터, CJ 갤러리(미국), 인사아트센터, 러시아작가연맹갤러리(러시아), 서울미술관, 킨텍스, 밀알미술관, 갤러리 IS, 갤러리 인사아트

 

글로벌 아트 인 뉴욕(World Trade Gallery, 미국) | Korean Artist & Their Tour of America (Gallery3, JD, Scent, 825 Gallery, 미국) | KAF 2005 KOREA ART Festival (세종문화회관, 서울) | 한러수교 20주년 기념 한러현대미술전(손니치 문화센터, 러시아) | 제20회~47회 한국여류화가협회전 (예술의전당, 조선일보미술관 외)(1992~2019) | 제11회~40회 홍익여성화가협회전 (예술의전당, 조선일보미 관, HOMA 미술관 외) (1992~2021) | 한국기독교미술 50년전 (갤러리 미술세계) | 사랑의교회미술인선교회 정기전 2001~2022 (사랑아트 갤러리 외) | 제1~4회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문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외) | 한국여성미술인 120인전 (국회 아트갤러리) | 2021 KCAF (금보성 아트센터)

 

국내외 단체전 및 그룹 초대전 참가 | 270여회 |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스웨덴, 베트남, 싱가포르, 대만,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연구조교 역임(1982) | 2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2010~2011 사랑의교회미술인선교회 회장 역임 | 18회 대한민국 기독교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1~2회 대한민국 크리스천아트피스트 운영위원 역임 | 사랑의교회 청년작가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작품소장 | 하와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 손니치 문화센터(러시아) | OMSC(미국) | 웨일즈 신학교(영국) | 삿뽀로 국제그리스도 교회(일본) | 사랑의교회 | 오륜교회 추모관 | 온사랑의교회 | 자카르타 국제대학교(인도네시아) | 아가페 소망 교도소 | 율촌화학 외 다수

 

현재 | 홍익루트(홍익여성화가협회) 회장 | 사랑의교회미술인선교회 명예회장 | 아트미션 고문 |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 한국여류화가협회 | 서초미술협회 | 한국미술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