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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 책 )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by ts_cho 2025. 4. 22.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장편소설, 정영목 옮김, 2024, 304쪽
 
일전에 맨부커 상을 받은 줄리언 번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를 나름 인상깊게
읽고 그의 문학세계를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다른 유명한 작품이라는 이 소설을 읽는다.
우선 소설의 원제는 소설의 핵심 인물 이름인 " Elizabeth Finch" 인데 왜
"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라고 했는지 생각해 보아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소설도 영어 원제 " The Sense of an Ending"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번역서를 읽을 떄마다 원제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편인데 이렇게 원제와 번역서의 타이틀의 연결고리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물론 출판사 측에서는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하겠지만..
 
어찌되었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를 읽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되어 있는 구성에 서구 철학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까지
전작과는 다른 높은 난이도에 그리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소설은 주인공 '닐'이 그의 스승인 'Elizabeth Finch'와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며,
기억의 한계와 역사의 왜곡, 그리고 인간과 삶의 다면성 등 심오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전작이 개인의 차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서구 기독교 역사 속 논쟁적인
인물인 율리아누스 황제의 이야기를 통해 동일한 주제를 더욱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특히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일신교가 아닌 다신교를 옹호했던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소설이라기보다 역사 비평서를 읽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Elizabeth Finch' 선생의 영향으로 주인공이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앞서 언급한 "기억의 한계와 역사의 왜곡"이라는 주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해 나가고 있다.
 
책 중에 글귀 몇 개..
 
죽은 자는 우리에게 우리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자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죽은 자를 더 신뢰한다.
이게 괴상한가, 아니면 분별력이 있는 건가?
여기에 덧붙여, 왜 우리는 집단적 기억-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 개인적 기억보다
틀릴 가능성이 적을 거라고 기대하는 걸까? (43p)
 
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검토해 볼 만한 암시적 사실들을 그냥 나열하여 어떤 사람을 설명해 보는
것도 똑같이 가능할지 모른다. (217p)

“실패가 성공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끗한 패배자가 지고 나서
뒤끝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하고 싶네요.
나아가서 배교자가 늘 진실한 신자보다, 거룩한 순교자보다 흥미롭습니다.
배교자는 의심의 대변자이고, 의심은-생생한 의심은-활동적인 지성의 표시죠.” (58p)
 
“시간에 속지 말고 역사-특히 지성사-가 선형적이라고 상상하지 마세요.” (…) “
그리고 잊지 마세요. 전기나 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에서도 어떤 인물이
형용사 세 개로 줄어들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는 늘 불신하세요.” (23p)

 
 이 동영상이 정말 소설의 줄거리를 잘 요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