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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 책 )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by ts_cho 2023. 5. 8.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소나무 펴냄, 2003, 608쪽

 

좋은 음악은 몇번이고 감상을 하는 반면 대부분 책은 한번 읽고 마는데 사실 좋은 책은 여러번 읽으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바가 있어 그냥 한번 읽고 말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 특별히 새로 읽을만한 책들이 눈에 띄지도 않고 또 그냥 시류에 따라가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 새로 발간되는 책들을 보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과 비교해보아도 별로 진전된 내용도 없어

가끔씩 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서 읽어보나 별로 재미가 없다.

반면에 시대성과 조금 거리가 있는 인문과학 분야의 책들은 재독 삼독을 해도 좋을 만한 책들이 있어

요즈음은 몇 권 뽑아서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어본다.

 

1558년 명종 13년에 퇴계 이황은 자금의 국립대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이었다. 반면에 고봉 기대승은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청년이었다. 

그해 겨울 12월에 퇴계가 고봉에게 첫 편지을 보내기 시작한 후로 두 사람의 편지 교환은 1570년 12월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독학으로 성리학을 공부하여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로 인정받았던 퇴계의 공부 과정은 끝없이 열린

자세였다는데 손자 제자 뻘에 해당하는 고봉이나 율곡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학우라고 부르면서 그들과 도학을 논하는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퇴계와 고봉, 두사람은  나이 차이가 26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극진히 존중해 가면서

교환된 수많은 편지의 내용들은 학문적인 것그리고 사적인 이야기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들은 고봉 기대승의 문집인 "고봉집" 에 잘 정리가 되어 있으면 "퇴계집" 에도 퇴계가 보낸

편지가 따로 잘 정리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개인들의 편지를 전하는 체계적인 우편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편지는 공무로

오가는 지인들이나 종들을 심부름 시켜 전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편지라는 것은 한번 쓰여지고 전달되면 수정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당시 선비들은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편지가 매우 소중했으면 그래서 조선 시대 선비들의

문집에서 시와 함께 편지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600쪽이 넘는 비교적 두툼한 책에 실린 수많은 편지들은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내 실력으로는

제대로 편지의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있으니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조금씩 읽어 나간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이 10년도 훨씬 지난 때이니 그 때는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자리에서 지속해서 죽 읽을 성격의 내용도 아니니 책상에 놔두고 가끔씩 한두편 읽고 있다.

 

고봉이 퇴계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보면 정말 극진히 예의를 지키고 있는데 한 편지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을 옮겨보면 " 선생님께 답해 올리는 글. 삼가 엎드려 여쭙습니다. 여름에 

들어서는 이 때에 지내시기는 어떠하신지요. 그리는 마음이 평소보다 갑절이나 더합니다. 저는

다행히 선생님의 두터우신 은혜를 입어..(중략)....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너무 많아 글로 다

드러낼 수 없습니다. 지내시는 모습에 높으신 덕이 더욱 무성하기를 빕니다. 저의 이러한

정성을 밝게 비추어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며 감사의 답장을 올립니다. 

경오 4월 17일, 후학 대승 절하며 올립니다 " 

한편 퇴계가 고봉에게 보내는 편지들도 지극히 극진한데 " 명언에게 절하여 말씀드립니다.

.........(중략)  병으로 피곤하여 이만 줄입니다. 삼가 절하여 답합니다. 병인 6월16일 , 황은

머리를 숙입니다 "

 

정말 두사람이 서로에게 깍뜻하게 예의를 지키며 존중하는 모습에 절로 감탄치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나이 한두살만 많아도 대접받기를 바라고 또 경직된 서열을 두는데 반해

이조시대에 선비들이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아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우리네

삶의 태도를  한번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