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상선은 목부분에 나비모양으로 위치하고 있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봄은 봄이다.
3월이 되니 대기 속의 공기가 뭔가 2월과는 다르다.
자연의 경이로운 변화에 “아 또 봄은 왔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지난 2주일 동안 나에게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그 동안 정기 검진 중에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결과는 계속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지난 연말에 정기 건강 검진을 받던 중 갑상선의 결절이
많이 커졌으니 이번엔 세침 세포검사를 받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예스했고 그 결과가 갑상선 암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좀 멍하여 어이없었으나 주위에서 갑상선 암은 치명적인
암도 아니고 흔한 암이니 그냥 수술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암이라고
하여 나는 좀 재수가 없구나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고
곧장 종합병원에 가서 확진 받고
수술 날짜를 잡고 일사천리로 2월25일 수술을 마쳤다.
그 동안 여러 번의 힘든 수술 경험이 있었던 지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전에 있었던 다른 수술 때는 항상 아파서
입원하여 나아서 퇴원했었지만 이번에는 멀쩡한 상태로 입원하여 수술을
마치고 수술부위가 아픈 상태로 퇴원하니 그 느낌이 영 다르다
그리고 이전에는 어딘가 문제가 있어 치료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상쾌하게 종결되었는데 이번에는 몸 안에 있는 하나의 장기를
제거했다는 사실이 영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나님이 괜히 갑상선이란 장기를 만들어 놓지는 않으셨을 텐데
이를 제거하고 신진대사를 돕는 호르몬이 이제는 다시는 생성 되지
않으니 대신 하루에 한번씩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요오드방사능 치료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지만.
사실 남들이 그냥 하루에 한 알 먹으면 별 문제 없다고 했을 때 그저 비타민
한 알 먹는 정도로만 가볍게 여겼었는데 수술을 마치고 이제 그 약을
복용하면서 느끼는 마음의 상태가 영 상쾌하지만은 않다.
비타민이야 가끔은 잊고 거를 수도 있지만 이 약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반드시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야 하고 또 당분간은 약간의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수술 이후에 느끼는 감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여태 받았던 다른 수술들- 복막염, 간 농양, 치질 등등은 어느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나의 귀책사유도 있겠지만 이번 이 갑상선 암은 전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긴 일이라 받아 들이는 게 그리 아주 쉽지는 않았다.
사실 수술 바로 전까지는 그냥 맹장염 수술 정도로 가볍게 여겨 갑상선이
목 부분에 있다는 사실은 알아도 뭘 하는 기관인지 알지도 못했고
또 찾아 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수술 전에 그래도 궁금하여
찾아보니 생각 밖으로 환자들도 많고 또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
환우카페도 있어 많은 정보에 접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갑상선 암도 경우에 따서는 매우 골치 아프고
심각한 상태에 있는 환자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으며 내심 우려도 된다
갑상선 암도 암은 암인지라 여러 가지 형태의 좋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어 시간이
갈수록 또 정보를 많이 알게 될수록 더 마음이 씁쓸하나 그래도 나는 초기에
발견하여 빨리 조치하여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나 항상 암은 재발의
위험성이 있는지라 앞으로 예의 주시는 하여야 한단다.
돌이켜보면 비교적 나는 내 삶에서 운이 좋았다는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랬던지 여기저기 많은 불행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와는 무관한
일로 별로 관심도 없었고 특히 비록 치명적이 아니라는 갑상선 암이지만
그래도 내가 암에 걸릴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세상에 얼마나 치명적인 암들이 많으며 또 질병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수(?)가 없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라고 뭐 항상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이제 시간이 지나면 약 먹는 것도 익숙해 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는 지금 느끼는 이런 복잡하고 힘든 생각들이
하나 둘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이번의 일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또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젊은 사람들도 갑상선 암에 노출이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노화가
되면서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효소의 생성이 약화되고 그러다 보니 우리 몸의
세포들이 자연스럽게 노화되어 일부는 죽기도하고 일부는 고약하게 암으로
변한다고들 한다. 여태 비록 나이가 들고 몸 상태가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을 겪다 보니 분명히 이게 일종의 노화 과정중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많은 질병에 약해지기
마련이므로 앞으로 나에게는 더 많은 힘든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지금 희망이야 오래오래 살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 사실 어느 정도라는 게
지금 생각과 나중이 다르겠지만 하여간- 그런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떠나는 게 바람이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여태 그리
몸을 사랑한 것 같지도 않고- 많이 피우고 많이 마시고 무리하고……
그러니 언제 어떻게 예기치 않게 불행스러운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꾸준히 운동하고 마음을 편하게 갖고
그 다음은 운명에 맡길 일 이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욕심도 많고 목표도 높아 육체와 정신을 닦달하며
지내온 것 같다. 이제는 좀 더 마음 편하게 먹고 내자신의 내면세계를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에 새삼 머리 속을 떠나지 않던 화두는 소위 공감이라는 것이다.
여태는 생각해보면 누가 어떤 불행에 처한 것을 보았을 때 정말로 상대방의
고통을 내 마음 깊숙이 공감하여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말 안되었구나 하고 아쉬움은 가졌을 지 모르지만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얼마나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을 심각하게 생각했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 불행이 내가 아니라서 또 내 자신 너무 이기적이어서
마음 깊이 따뜻하게 공감하는 행위가 많이 부족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흔히 하는 얘기로 인간의 본성이란 아프리카에서 수십만의 인구가 굶어 죽어가고
있어도 내 목의 종기가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지만
그래도 좀 더 남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진지하게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찌 보면 고통이라는 게 본인들의 귀책 사유도 있겠지만 내가 갑상선 암에
노출된 것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 수도 있고
또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 속에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겠는가.
일전에도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할 때 많은 겸손한 생각들을 했었으리라.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그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며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어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나날의 수많은 일들 속에 지난 일들은
기억 속에 희미해지고 또 그 전처럼 같은 삶을 사는 게 우리네 모습인데….
내일 다시 토요일…지난 몇 주를 거른 야외사생을 나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다시 나는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돌리고 그전과 같은 삶을 살겠지.
그래도 아마 뭔가는 조금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은데…….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서 넒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고은 시집, 순간의 꽃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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