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펴냄, 2021. 329쪽
2016년 '채식주의자' 라는 소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5년만에 펴낸 장편소설.
그동안 한국 작가들의 소설 몇 권을 읽고 실망한 적도 있어 이제는 소설은 적어도
off line 서점에 가서 몇페이지라도 읽어보고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강 작가의 소설은 신뢰성이 있어 그냥 인터넷으로
그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와 함께 주문했다.
우선 몇 페이지을 읽으면서 작가의 글 한 귀절 한 귀절마다 대단히 정제되어 군더더기가
없는 성실한 문체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담백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드라이하지도
않은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로서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작가가 처음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해서 그런지 문장이 만연체로 늘어지지 않아 산뜻한
느낌을 받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서 제주도 방언과 함께 전개되는 서술에는
많은 집중이 필요하기도 했다.
소설의 내용은 해방 이후 1948-1949년 제주에서 있었던 소위 4.3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소설 속의 화자인 '경하' 와 4.3 사건 피해자의 딸인 '인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당시 사건을 풀어나가고 있다.
책의 뒷부분을 보면 작가가 이 소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참고했는지
나오는데 작가의 성실성을 신뢰하는 입장에서 소설에서 기술된 내용에 대해서 믿음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선'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이 사건을 딸인
'인선' 이 계속 추적해 나가면서 자료를 수집해 왔고
'경화' 와의 대화를 통해 처절했던 가족 피해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주 내용이지만
소설의 장치로서 앵무새 두마리가 등장하고 또 제주도의 엄청한 폭설 속에 계속 눈이
어떤 메타포적인 소재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있어
단지 그냥 역사적 기술을 넘어서서 소설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해방이후 좌우의 대립속에 제주도에서 노인 여자 어린아이 가릴 것
없이 양민이 삼만명 이상 살해되고 육지에서도 같은 이유로 이십만명 정도도
다 살해된 엄청난 민족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동안은 살해된 양민들은 전부 좌익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여져서 역사책에서도
간단히 좌익 폭동을 진압했다는 식으로 기술되고 넘어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국가의 폭력사건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졌지만 워낙 오래전의 사건이고 한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사건이다보니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솔직히 나도 이 사건에 대해 막연하고 어설픈 지식만 갖고 있었으나 자세한 원인과
개요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면서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어찌되었던 한 섬에서 이념의 차이로 인해서 그리고
그 이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서로의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인해서 어린아이
여자 노인 가리지 않고 그렇게 잔인하게 토벌하던 당시의 사건 자료들을 읽다보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새삼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 대로 인간은 어느 순간 야수보다 더 지독한
악마가 되어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성찰이 없이 엄청난 잔인한 일을
벌렸던 일들이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지구상의 모든 창조물
중에 인간보다 더 잔인한 창조물은 없을 것이라는 씁쓸함 .
작가의 전작 ' 소년이 온다' 가 광주 5.18을 다룬 내용이고 이번에 이 책도 4.3 사건이라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맨부커 상 수상이후 대중적으로 인지도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재미나 대중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소설을 써 온 작가의
글은 소설적 재미를 찾아 그냥 대충 읽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는
평도 있지만 '한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작가인 만큼 앞으로도
그의 글을 꾸준히 따라 가볼까 한다.
끝으로 소설의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 의 의미는 이런 역사적인 비극의 중심을 파헤치는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끝까지 끌어안고 걸어 나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 고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로 지난해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의 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하고,
올해 3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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