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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 책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by ts_cho 2022. 2. 8.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시집, 문학과 지성사 발간, 2021. 165쪽

 

일전에 한 강 작가의 소설 ' 작별하지 않는다' 와 함께 작가의 시 세계가 궁금해서 같이 주문한 책.

적극적으로 시집을 사서 읽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인터넷 교보문고를 보면서 평이 좋은 시인이 있으면

가끔씩 사서 읽어 보는데 얼마전에 언급한대로 역시 책방에 가서 몇 줄이라고 직접 읽어 보고 내 취향에

맞는 시집을 사야지 그냥 남들의 평을 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면 아닌적도 있고 아무튼..

 

이 시집의 초판이 발간된게 2013년이고 내 손에 배달된 책은 2021년 12월 발간된 초판 31쇄라니 

8년동안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 왔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작가가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해져서 그때부터  많이 팔렸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 현역시절의 습관이 있어 뭔가를 봐도 분석하려는 ㅎㅎ

이건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겠고 아무튼 책을 받고 몇 편 읽으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우선 

시가 비교적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많이 무겁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작가가 단어를 선택할 때 상당히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물론 시야 말할

것도  없을테고 그리고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고뇌하는 진지한 내용들이라는 것. 

 

 

여러 시 중에서 하나..

 

서시

 

한 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 파라과이 국적의 Barrios란 작곡가의 classic guitar masterpie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