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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write and draw to empty my mind and to fill my heart ..
생각들

( 생각들 )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대

by ts_cho 2024. 2. 2.

윤동주 시인이 작접 써서 남기신  "서시" 의 초고

 

아침에 펫북에서 한인섭이란 분이 ( 요즈음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은데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이신 분으로 추측된  ) 쓰신 아래의 글을 읽고 새삼 윤동주 시인의

" 서시" 를 생각해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갈수록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대가 되어 가고 있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다. 

맹자가 이야기한 인간이라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4단 중에 수오지심( 羞惡之心)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인데  세상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그리고 권력에 도취되어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이제 은퇴한 입장에서 세상사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행복이라는게 내 개인적인 차원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도 행복해야만 제대로

행복해지는 것일테니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

품격이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아무튼 이 아침에 나 자신부터 다시 한번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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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섭 님의 글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온 국민이 좋아할 뿐 아니라 애송하는 윤동주, 그가 살아서 남긴 것은 시 초고였고,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948년 그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했던 분들이 동주 글을 모아 시집을 냈습니다. 그 시집 이름은 누구나 아는, 참으로 아름다운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입니다.

자필초고를 수십번은 들여다 보며, 동주와의 마음대화를 이어봅니다.

먼저 제목 아래에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 동쪽의 기둥, 이름은 왼쪽에 있고, 제목 바로 아래에는 뜻밖에
"童舟"라 적혀 있습니다.
아동 동, 배 주...이니... 아하 어린이의 심정으로 띄워보내는 배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린이된 심정으로 종이배를 독자들에게 띄워보내는 것이겠네요. 사실, 윤동주가 남긴 동시가 많고, 그 시집에도 동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독자인 우리들은, 이 시들을 윤동주가 보내오는 종이배로 생각하고 내 맘속의 강물에 띄워올리면 좋겠습니다.
다음 왼쪽엔 "정병욱 형 앞에/ 윤동주 정"이라 적혀 있습니다. 연희전문 다닐때 너무나 다정다감한 단짝이었던 정병욱에게 윤동주가 준 자필원고입니다.
동주는 연희전문을 거의 마치면서 자신의 시집을 내고자 했고, 필사본을 3부 만들었습니다. 그 중 한부는 이양하 교수에게 드렸고, 한부는 자신이 갖고, 한부는 정병욱에게 증정했습니다. 시편을 받은 이양하 교수는 출판이 위험하다고 만류했기에 일제하에서 시집을 낼 수 없었습니다. 윤동주 보관본은 아마 일본유학때 지참했겠지만, 그의 투옥과 문초 과정에서 압수, 유실되었을 것이고요.
정병욱은, 이 친구의 시편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그가 중국으로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이 시편을 전남 광양의 어머님께 보내면서 잘 보관해주기시를 신신당부했습니다. 어머님은 마루밑에 항아리를 묻고 거기에 동주 시편을 잘 보관했습니다. 정병욱은 다행히 해방후 살아왔고, 동주가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또다른 친구 강처중은, 동주가 일본에서 보낸 몇편의 시를 보관했고, 그 둘의 시편이 모여, 1948년 1월 드디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주의 자필 시고의 첫 장에 있는 "정병욱 형 앞에"란 글귀 앞에, 그 귀하고 안타까운 사연이 느껴지며 그것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동주에게도 감사, 병욱에게 감사, 처중에게 감사. 그모든 귀한 사연에도 감사...합니다.
그 다음 본시가 나옵니다. 첫 시는 누구나 아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그런데 자필초고를 보면 그 시는 아무 제목이 없습니다.
동주는 그 시의 제목을 쓰지 않았습니다. 1948년의 편집자가 "서시"라 붙인 것이고요.
이 시는, 동주가 출간을 위해 쓴 시를 모은 다음, 출간하자고 마음먹고 쓴 마지막 시입니다. 곰곰이 읽어보면, 서시라기 보단 전체의 요약시인 것 같습니다. 논문에 비유하면, 논문의 <초록>(Abstract)이라 보는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꼭 제목을 붙인다면, 저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또한 윤동주의 다짐 시 같습니다. 엄혹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내적 다짐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깔고 한줄 한줄 음미해보겠습니다.
1. "죽는 날까지":
첫 마디에 숨이 꽉 막힙니다. 우리가 어느 시집을 구입했다고 합시다. 그 첫 장을 펼치는데, "죽는 날까지"로 적혀 있다면, 숨이 막히지 않겠어요. 너무 비장하고 엄숙하여, 시집을 산 것을 후회할지 모르겠습니다.
2.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앙천불괴,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귀절도 생각나지만, 앞에 죽는 날까지가 붙어 있어, 그 비장함과 강렬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올 구절이 뭘까요. "나는 맹세합니다"가 아닐까요. 그럼 의열단원 맹세문이나, 윤봉길 의사가 거사 직전에 한 맹서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존경은 하겠지만, 우리 각자의 여린 감수성을 울리기엔 좀 어울리지 않겠지요.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고 죽기로 맹서하나이다~~가 아니라, 괴로워했다....사실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느낌은 심적 갈등이고, 갈대처럼 연약한 자신의 모습이며, 그러나 현실타협이나 추종은 할 수 없고, 그러니 보편적인 정서는 "괴로워했다"가 딱입니다.
그런데 "잎새에 이른 바람"은 뭐지요? 바람은 여러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봄바람, 뜨거운 열풍, 산들산들 가을바람, 매서운 삭풍 온갖 모습이 있는데, 이 시의 바람은 무슨 바람이지요? 실마리는 그가 이 시를 쓴 날짜입니다. "1941.11.20."로 적혀 있습니다. 11월 하순의 바람은 잎새를 뚝뚝 떨구는 처연풍이겠지요. 잎새를 뚝뚝 떨어뜨리는 그 초겨울 바람 속에, 스스로 그 강풍을 견딜 수 없는 정도로 연약한 잎새처럼, 괴로워한 그 모습이 선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의 실존적 감정이입이 가장 들어간 단어는 바로 “잎새”인 것 같습니다. 그런 바람은 어쩌다 한번 지나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늘 불어닥치기에, 그 바람 앞의 잎새처럼 연약한 자신입니다. 앙천불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면서도, 현실의 바람 앞에 한없이 연약한 자신...그게 시인의 자기 모습이지만, 가혹한 현실 앞에 놓인 우리 자신의 모습도 되기에, 우리 모두가 그 시인의 실존에 쉽게 감정이입되기도 합니다. 그 시는 동주의 모습이기도 하고, 독자인 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4.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별은 항구, 불변의 지향입니다. 높고도, 변치 않은, 그리고 밝은 그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저 별에 대고 다짐하는 그런 마음을 간직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음 "모든 죽어가는 것"은 뭘까요? 아마 보편적으론 "생명"이겠지요. 모든 생명은 살아있되, 죽어가는 과정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뿐일까요. 1941년 즈음이면, 시인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글자도, 자신의 이름도, 존경하는 분들도 생기를 보존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과정이었으니...아무리 압박 속에 살아가도 내 내면에서는 그 죽어가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굳건히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저는 읽어봅니다.
그런 마음을 시인은 한 단어로 "사랑해야지"하고 합니다. 뜨거운 정열 같은 사랑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에 대한 "연민"을 갖고, "슬픈"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지만 굳건하게 그 존재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을 한 단어로 "사랑해야지"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시인은 그런 “사랑해야지”의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5.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길이 있고,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동주 자신은 "나한테" 즉 동주 자신의 고유한 길이 있습니다. 이를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소명(calling)이 되겠지요. 자신의 소명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자기다짐입니다. 첫 연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구절이, 중간에 여러 사색을 거쳐 이젠 "걸어가야겠다"고 다짐으로 귀결됩니다. 의열단식 다짐이 아니라, 동주식의 고유한 자기다짐이겠습니다.
6.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앞의 귀절이 끝나고, 즉 자기다짐이 끝나면 시는 끝인데, 그 다음의 한 구절이 나옵니다. 초고에는 한 줄이 띄어 있으니, 긴 호흡과 침묵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결구가 나옵니다.
매일이 그러하듯, "오늘 밤에도" 입니다.
별이란 항구불변의 빛이 자신을 인도하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바람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괴롭히며 자신을 쌀쌀하게 스쳐갑니다.
우리 모두는, 그 높은 별과, 지상의 바람 사이에 있습니다. 별을 보고 이상을 설정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의 바람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해도, 어디 딴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밤에"도" 여전히 현실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7. 이 시는 낭송에 너무나 적합합니다. 몇번 읽다보면 그냥 외워지는 수준이고, 청소년들이 책상 위에 걸기에도 좋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냥 좋습니다. 이런 애송시는, 그 리듬이 각별합니다.
이번에 #범도루트 따르면서, 윤동주의 마을에 가서 느끼다보니, 그 시는 강-약-강-약 톤으로 시종 이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동주의 평생 절친으로 송몽규가 있습니다. 사색형의 동주가 있는가 하면, 적극적 행동형의 인물입니다. 둘 다 단짝이었고, 일본에도 같이 유학했고, 죽는 시점도 1945년 2월(동주), 3월(몽규) 거의 같습니다. 무덤에도 "시인 윤동주 지묘" "청년문사 송몽규 지묘"로 붙어 있습니다. 찬 바람과 눈보라 맞아가며, 묘소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 두 분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걸어가면서, 이 시가 떠올랐는데, 이를 몽규의 강한 톤과, 동주의 여린 톤으로 오가며 낭송하면 뜻 전달이 더 확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동료들과, 학생들과, 같이 그렇게 낭송하면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몽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동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몽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동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몽규, 동주)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몽규) 오늘 밤에도 별이
(동주)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