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6월5일) 친구와 함께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에 다녀 왔다.
전날까지 쾌청하던 날씨가 비가 오면서 대지를 촉촉히 적시고 있다.
미술관의 위치는 산자락에 위치 좀 불편한 감이 있었지만 북악산자락에 경치가 수려하다.
미술관 디자인도 멋지고 또 전시된 작품들도 김환기 화백 그림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있어 기대 이상의 큰 즐거움이 있다.
대한민국의 최고 화가중의 한 분이니 이정도의 개인 전시관을 갖는게 하나도 이상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화가 사후에 그 부인의 헌신과 수고의 결과라고 한다.
김환기 화백의 부인은 원래 유명한 소설가 이상의 부인이었으나 이상이 죽은 후 김환기화백과 결혼하였다고
한다. 인터넥에서 찾아보면 그 두분의 사랑얘기가 정겹게 소개되고 있다.
전시관은 본관, 판화관 그리고 수향산방(김환기화백의 호인 수화(樹話)와 부인의 호인 향안(鄕岸)의 첫글자를
따서 만들었던 성북동의 화실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은 그의 소위 뉴욕시대(1963-1974)에 그려진 작품들로 그 유명한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의 연작들로 큰 전시관에 시원 시원하게 걸려 있다.
한참 전에 그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고 문득 시골에서 논에 가면 개구리가 알을 많이
낳아 놓은 장면이 생각났던 적이 있다. 그 많은 알들이 나중에 올챙이가 되고 또 개구리가 되어 뿔뿔이
흩어질테니 그림의 제목과도 썩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는데 김환기가 모티브를 얻은 것은 다른 곳에서
연유한다.
오광수 평론가가 쓴 "김환기, 영원한 망향의 화가"라는 책에 보니 1970년 한국일보사(당시는 한국일보사의 사세가
막강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가 "한국 현대 미술 대상전"이란 최대의 현대 미술전을 기획하면서 김환기에게
작품 출품 의뢰를 하였고 1970년2월11일자 일기에 보면 작품 출품하기로 결심하였으며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하겠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그 시의 마지막 귀절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가
명제가 된 것도 그 이유라고 하니 내가 개구리 알 운운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고 하겠다 ㅎ ㅎ
당시 유일한 공모전인 "국전"은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해 버렸고 현대전을 표방했던 "현대작가초대전(조선일보주최)도
타성에 빠진 연례 행사에 그쳐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파격적인 상금을 걸고 시작한 전시가
이 "한국현대미술대상전"인데 최초의 대상이 바로 김환기의 이 그림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는 한 떄 유행가 가사로도 불리어진 적이 있어 우리 귀에 비교적 익숙하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수향산방에 부인에게 보낸 편지 몇 장이 액자에 넣어 전시되고 있는데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쓰여진 편지가 있다.
그림 그리고 글씨들... 전부 멋진 또 하나의 작품이다.
전시장안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별관, 수향산방에서 사진 몇 장, 그리고 환기 미술관 싸이트에서
그의 작품 몇 점 올린다.
비가 내려서인지 아니면 위치 때문인지 별로 사람이 없다. 언제 다시 한번 와서 조용한 미술관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보고 김환기의 그림속에 흠뻑 젖어 보리라 생각하면서....
그의 뉴욕 작업실을 재현해놓고 있다.
지난 2013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가지 사업이 있었고 그 기록들이 동영상으로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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