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으로 5세가 되는 외손녀가 놀러 올 때마다 이것 저것 같이 놀아주는데 지능 개발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시킨다. 본인도 재미있어하고 또 아이들 보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데 시간도 잘가고...
아무래도 내 화실 아내 화실 들락거리며 그림도 많이 보게 되니 이제는 그림에 대해서 상당한 식견을 갖춘듯(^^)
자주 그림에 대해 엉뚱한 코멘트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비구상 작품을 하는 전업화가인 할머니보다 구상 작품을 하는 아마추어 할아버지를 높이 평가하는듯 일전에는
할아버지는 세상을 그린다는 말을 해서 깜짝 놀라게한 적도 있다.
전에는 그냥 막 상상해서 그리더니 일전에는 갑자기 집에 있는 장미 조화를 하나 뽑아들더니 보고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 그리고 나서 가위로 잘라내어 꽃병에 꽂으려고 한다. 장미를 단순화 시키는 능력이 대단하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능력이 단순화(simplification) 능력인데..
누구나 다 자기 손자 손녀에게는 사소한 것도 감탄한다지만 이제 만5세밖에 안된 아이의 지각능력에 감탄한다.
3살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뭉크 그리고 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그려서 재미있어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제법 사물의 형태를 보고 그려내는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다.
모짜르트는 다삿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타이거우드도 그 나이부터 골프를 시작했다는데 손녀에게 그림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켜볼까 상상도 해보기도 하지만....
미술은 상상력을 요하는 예술이니 어린나이부터 강제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얘기일테고.
( 왼쪽은 뭉크 스타일로 그린 할머니, 오른쪽은 바스키아 스타일로 그린 할아버지, 실제는 수염이 없지만 동화나
티브이 등을 통해 할아버지는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어린아이에게 인식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 ( Ernst H.J.Gombrich) 에 따르면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리는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한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벌써 우리는 이런 개념적 사유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는데 그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작게 그리거나 과감하게 삭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는 대로" 그린다는 얘기이다.
사실 이런 이론은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이미 수많은 검증을 거친 이야기로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눈의 망막에
대상이 다 투시되지만 뇌로 그 정보가 가면서 주관이 개입하여 정보가 걸러진다는 것이다.
아마 농구 경기 중계 장면에서 고릴라가 지나가지만 그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테스트를 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결국 좋게 말하면 "지(知)의 도식"이 적용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편견이 개입되어 실상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야기가 거창하게 나갔는데 아무튼 그러고 보니 만3살 때 손녀가 그렸던 그림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눈썹은 빠지고 눈 그리고 입이 중심이 된 그림이 되는 모양이다
항상 그림을 그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왜 그림을 그리는가하고...
내면에 있는 그 무엇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 ...글쎄 어린아이에게 그런 형이상학적인 해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외손녀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저런 본질적인 의문과 함께 인간의 지적 능력이 발달하는 경이로운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보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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