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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write and draw to empty my mind and to fill my heart ..
유화(Oil Painting)

(유화) 강화도에서 가을을 그린다

by ts_cho 2016. 9. 26.


강화도에서 가을을..40.6 x 30.5 cm, Oil on Oil Paper, 2016


오랫만에 강화도로 가기에 바다가 있는 풍경을 내심 기대했으나 해안과는 거리가 먼 마니산 입구에 내린다.

주위를 돌아보니 여기 저기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이제 정말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마음에 드는 구도를 위해 약간의 경치도 조합하면서  따가운 햇살 아래  2시간만에 가을을 한 장 완성한다.


일전에 내가 좋아하는 류시화 시인이 쓴 글이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어

여기 옮긴다.


<풍경이 주는 선물>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장엄함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이미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일몰의 색채나 절대자의 조각품인 듯 깎아지른 계곡,

광대하게 뻗어 내린 은하수 등 대자연의 경이에 감동하는 순간에 우리는 인간 차원을 넘어선 신의 세계를 인식한다.

그래서 장엄한  풍경에는 언제나 종교적인 기운이 서려 있다.

전에 서귀포에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단 하루도 똑같은 바다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날마다 다르고, 오전과

오후가 달랐다. 마치 변화만이 바다를 유지하는 기술인 것처럼. 하루는 산책 중에 갑자기 비바람이 치는데

해안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전에도 마주친 적이 있어서 우리는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암에 걸려 요양차 제주에 내려왔으며, 매일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이 일과라고 했다. 내가 그의 건강을 염려하자

그는 말했다.

"풍경이 나를 치료해 줍니다. 저 바다를 봐요. 파도와 구름들을 봐요."

그는 풍경 속 모든 변화들을 절대자의 힘으로 느끼는 듯했다. '풍경을 보라, 그러면 치유되리라'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 안의 심미안을 일깨우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라앉힌다. 감옥에 갇힌 죄수에게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바라볼 풍경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생각과 감정의 감옥에 갇혀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뇌에 시달리다 인도에 온 여성이 있었다. 갠지스 강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얼굴만 봐도 삶이

피폐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상황이었다. 숙소가 강 옆에 있어서 나는 그녀와 함께

베란다나  계단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순례자들을 가득 실은 배들이 점점이 떠가고, 흰 철새들이

강에 띄운 대나무에  내려앉고, 아이들이 금잔화 꽃등불을 팔고, 매일 어둠이 내리고 또 날이 밝았다.

차츰 그녀는 혼자서도 평화롭게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풍경이 그녀의 마음을 치료하는 데는 한 달 남짓이면

충분했다.

균열을 아물게 하고 마음을 평상심으로 되돌리는 풍경의 마술적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풍경은 신이 창조했으며, 따라서 신의 힘이 그 안에 내재해 있는 걸까?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야간열차를 타고 델리 공항으로 가는 그녀를 기차역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밤길을 돌아가야 하는

나를 걱정했다.

제주도에서나 인도에서나 나 역시 필요했던 것은 존재에 난 상처와 균열의 치유였다.

생태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의 산문 <바닷가(The Edge of the Sea)>에 적힌 구절을 나는 좋아한다.

40대 중반 무렵 카슨은 유방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대지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이들은 삶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의 저장소를 발견한다. 새의 이동, 밀물과

썰물의 주기적인 변화, 봄을 준비하는 꼭 다문 꽃봉오리에는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질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자연의 반복된 리듬에는 무한히 치유하는 어떤 것이 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며,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온다는 확신 같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