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32 x 24 cm, Watercolor on Arche Paper, 2016
새벽비/ 김선호
새벽에 찾아온 가을비는 야시장에서 싸움이 붙은 것인지
옥신각신 흥정을 하는 것인지 꽤나 야단스럽고 요란스럽다
때로는 꼼지락 거리며 이불 속에서 게으름의 시체놀이를 하는 시간에
귀를 성가시게 하고 마음을 또 툭툭 건드리기도 한다 빗소리 사이로
독특한 코르시카 언어가 묘한 음색으로 창문 곁에 서면 서늘한 아침의 설램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또 억지로 늦잠을 청한다
길을 나서면 저절로 눈으로 드는 산
능선에 흩어진 안개가 머리를 풀고 안개가 지난 곳에는 붉은 단풍이 눈을 뜬다
가을은 가난한 영혼의 또 다른 계절 가난한 영혼이 붉게 바스락 거리면 그것은 발밑에 가을이 지나가는 것
비맞은 습한 바람이 몸을 털고 일어나 서늘한 그리움이 되고
서늘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면 나무는 남은 잎을 마저 찬바람에 얹어 떨군다
떨어지는 잎 따라 그리움도 뚝뚝 떨어지고 가을도 뚝뚝 떨어져 흙바닥에는 지난 계절의 속삭임들이 나뒹군다
가만히 바닥에 앉아 빛과 어둠 속에 흩어졌던 기억을 하나씩 주워서 들여다 본다
그것은 시간의 아름다운 조각들이거나 다가오는 계절 곱은 손 감싸주는 또 다른 손의 온기를 지닌 언어일지도 모른다
가끔씩 여기에 이 친구의 시을 소개한다.
일전에도 한번 썼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다재다능한 사촌 동생이다.
그냥 다재다능이 아니라 프로급의 다재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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