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김훈 長篇小說,355 쪽, 해냄 발간, 2017
김훈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새삼 이 작가의 독특한 문체에 김탄을 금치 못한다.
한 때 김훈의 글에 매료되어 그가 쓴 모든 책을 사서 읽어 보았는데 언젠가 문득 어떤 소설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너무 드라이한 문체가 그 소설의 내용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회의를 하던 차에 최근에 새로 나온
"라면을 끓이며" 라는 수필집을 사서 읽어 볼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었던 기억이 새롭다.
사회부 신문기자 27년 동안 몸에 밴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글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육하원칙에 충실하려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드라이한 그의 문체는 확실히 문단에서 독특한 일가를 이루고 있는데 이번에 그가 펴낸 "공터에서"라는 장편소설은 그런 문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객관적인 위치에서 마치 방관자와 같은 시각으로 무심한듯 기술해 나가는 그의 문체는 아기자기한 연애소설같은데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는 않고 빡빡한 현실세계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 나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을 단검과 같은 단문으로 예리하게 베어내는 그의 글에서 보이는 인간세계의 모습은 결국 저자가 갖고
있는 세계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보이는데 - 저자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논리는 폭력이라고 언젠가 인터뷰에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냉혹한 인간세계에서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인 "비루한 삶의 모습"들이 그가 쓴 여러 소설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런 인물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그리고 허망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마차세"는 나와 같은 세대에 속한 나이이다보니 소설속에서 그가 살아가며 호흡했던 과거들이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데 저자가 "공터"라고 제목을 붙인 아직은 무엇이 완성되지 않고 뭔가 그곳에 지여햐하는 미완성의 세계속에서
방황하지만 그냥 삶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나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우리 세대의 지난 모습과 전혀 낯설지 않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번에 독파한다.
그러나 한편 드는 생각은 그의 글은 여러 군더더기 설명이 없기 떄문에 그런 경험을 했던 세대들이 읽으면 행간에 절제되어 있는
많은 감정들을 같이 공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시대를 겪지 않았던 젊은 세대가 읽을 떄 과연 그런 공감이 올까하는 의문도 들지만..
아무튼 그의 글을 읽으면 항상 진한 허무의 감정이 묻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말투나 제스쳐에서 글쓰기가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아직도 연필로 꾹꾹 눌러가면서 쓰고 또 지우개로 지워가면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쓰기는 그가 말하는 대로 "몸이 글을 밀고 나간다"라는
표현 그대로인데 그의 표현대로 사물과 언어가 결국은 같을 수 없는 글쓰기의 한계에 절망하고 그렇지만 또 숙명처럼 글을 쓴다는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에 외경심을 갖는다.
단검과 같은 예리한 문체..단순함의 미학.
글 뿐이 아니라 그림에서도 또 삶에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화두.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
"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 거리고 죄 없이 쫒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일전에 그냥 지나갔던 "라면을 끓이며" 라는 책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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