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우저를 읽다, 김은호 시집, 문학의 전당 펴냄, 2018
가까운 친구가 시집을 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로 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한참 무역이 대세이던 70년대 말 종합상사에 취직하여
파나마인가 중남미 지점에 근무하며 혁혁한 실적을 올리던 무역전사인데 은퇴하고 나서 명지산 산자락에 터를 잡고
시작에 몰두하여 그동안 여기저기 시를 발표해 오다가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에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멋진 친구이다.
중고교 시절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또 친구의 성공과 좌절을 알고 있고 독실한 캐톨릭 신자로서의 신실한 그의
삶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지 그의 시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감동을 받는다.
아침 일찍 명지산 산자락 울창한 잣나무 숲을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고 있을 친구를 떠올려본다.
친구의 성취에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시를 기대한다.
문득 명지산 그 잣나무 숲 향기가 그리운 날이다.
주옥같은 50여편의 시 중에 하나..
산짐승 우는 소리 듣는 저녁 (김은호)
산길을 내려오다
산짐승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구의 울음소리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노을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
또 어쩌면, 말 못할 서러움을
오래 삭힌 노래일 것도 같았습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샘솟듯
허공을 토해내는 소리에 저물던 산이 휘청거리고
구름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나는 눈물 애호가는 아니지만
그 어떤 울음도 꺽지 않으렵니다.
출렁이는 어깨 위에 조각배같은
손하나 얹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울음소리 난 곳 돌아다보는 나를 숨어 바라볼지도 모르는 눈
그 샘물에 나를 씻고 싶었습니다
다시 그 소리 들렸습니다
내게 하소연하는 것 같기도
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산짐승 울음소리 뒤 저 바깥세상에는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하고
홀로 계절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 그림자 밟으며 봄날은 멀어져 가고
울음을 잘 배우고 싶은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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