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 Howard Zinn) 지음, 유강은 옮김, 도서출판 이후, 2017, 391쪽
"You can't be neutral on moving train" 의 원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미국사회에서 노암 촘스키 교수와 함께
항상 인권운동의 선봉장에 서왔던 하워드 진 교수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성격을 갖고 있는 책으로 " 역사가 잘못
흘러가고 있을 때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 잘못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신념하에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주었던
한 지식인의 삶의 기록이다.
하워드 진 교수는 1922년 뉴욕 가난한 조선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18세에 조선소에 취직,
3년동안 일하다가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 육군항공대의 폭격수로 참전하여 베를린,체코,항가리등 폭격에 참여했으며
전쟁이 끝나고 재향군인 프로그램의 덕으로 뉴욕대학,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남부에 있는 스펠먼대학
역사학 교수, 보스톤 대학의 정치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0년 89세의 나이로 영면하신 분인데 이 책은 그의 인생
역정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으로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의 유년시절 겪었던 지독한 가난, 그리고 조선소에서의 가혹한 노동 환경,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서 네이팜탄 폭격에
참여했던 경험,그리고 남부에서 겼었던 흑인들에 대한 상상할 수도 없는 인종차별의 기록, 또 1965년 미국이 시작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의 기록까지 그동안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한편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중성에 대해 많은 생각까지를 하게 된다.
우선 그가 남부에 위치한 스펠먼대학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 겪었던 인종차별의 기록을 보면 1861-1865년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 흑인 노예제도가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남부에서는 거의 100년이 지난 1960년대까지도
상상을 초월하는 인종차별의 기록 또 이에 맞서서 흑인들과 함께 싸웠던 진 교수의 역정을 읽으면서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인종편견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1492년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에 도착한 이후 그리고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청교도들이 들어온
이후 미국대륙에서 벌어졌던 대단하게 미화되고 있는 서부개척사의 이면에는 6,000만명 이상되는 인디언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이름의 원주민 살육의 역사라는 사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100여만명 이상의 흑인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려먹었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역사란 결국 승자의 역사라는 아이러니를 새삼 상기하게 된다
또 이 책은 상당 부분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에서의 반전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1964년 미국이 아시아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과 전쟁을 시작하였을 때 앞장서서 반대했던 반전운동의 기록을 읽으면서
당시 제국주의 사고가 팽배했던 미국내 상황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베트남 전쟁은 10년이나 계속되다가 1975년에야 끝나게 되는데 그 10년동안 베트남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인류 문명사의 커다란 치욕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미국내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이 온갖 박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벌였던 반전운동애 대해 국가가 자행했던 많은 반인권적인 행동들을 보면서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인가
하는 명제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컬럼버스는 서구 문명의 가장 못된 가치-탐욕, 폭력, 착취, 인종차별, 정복, 위선- 을 표상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 전쟁과 군사주의에 대한 혐오, 인종 불평등에 대한 분노, 민주적인 시회주의와 전 세계
부의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배를 위해 좌절하지 않고 한 평생을 바쳤던 한 지식인의 기록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
책 마지막에 있는 저자의 믿음에 공감을 하면서 문득 1970년대 학내외에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번번히 박살나던 모습들을 보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그런 좌절감을 느꼈던 지난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은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을 본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하게 행동한 시대와 장소들- 이러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 을 기억한다면,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적어도 팽이 같은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 역사가 잘못 흘러가고 있을 때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 잘못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그의 신념을 읽으면서
문득 유시민 작가가 썼던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 마지막 대목인 네프라소프의 싯구인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라는 귀절도 새삼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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