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태학사 펴냄, 2022. 353쪽
저자 이덕무(李德懋, 1741(영조 17) ~ 1793(정조 17))는 조선 후기 서얼 출신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박지원,
박제가등과 교우했던 연암 일파의 일원이다.
규장각 초대 검서관과 적성현감을 지냈고 저서로는 71권 32책 문집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가 있다.
이덕무는 스스로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부르고 자신이 거처하던 곳을 '구서재(九書齋) 라 이름을 붙일 만큼
독서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 동안 읽은 책이 2만권이 넘는다고 하는데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책 출판이 그리 쉽지 않은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독서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내면서 당시 조선에 유입된 명말청초(明末淸初) 문집을 열독하였고 그 결과가
소품과 박학으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소품'이란 공리성을 배제한 짧고 감성적인 산문으로 지금의 에세이와 비슷한 성격의 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이 책은 이덕무의 소품집을 모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 실려있는 글들은 아주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글들인데 특징을 살펴보면 글이 비교적 짧지만 필요없는
미사여구가 배제되어 간결한 느낌을 주며, 주제가 정말 다양하여 추상적인 주제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것들
예컨데 쥐, 벼룩, 거미, 귤, 매미 등등 기존의 산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허심탄회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그의 글은 본인의 주관적인 감성적인 분위기의 글들이 많은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당시 조선 후기의
시대상과 또 사회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이덕무의 글에는 대단한 가르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인생의 지침도 없다. 단지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자신이 보는 주관적 관점에서 담담하게 쓰고 있다.
조선은 성리학을 이데올로기로 삼은 사회이다보니 글은 응당 성리학적 이념, 도의,예 등을 문학으로 형상화
시켜야 했는데 이런 소품의 글들은 개인의 주관과 감성을 다루고 있어 성리학을 중시하는 조선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글들이었다. 그래서 정조는 '소품은 시문을 짓는 일에 불과하지만 , 사학(邪學) 을
제거하려면 마땅히 소품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고 했고 이것이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킨 이유였다고 한다.
당시 이덕무는 문체반정의 대상자로 지목되어 정조로 부터 반성문을 지어 바치라는 명령도 받았는데
그래도 정조는 이덕무를 총애하고 그의 글이 아까워하여 이덕무가 죽고나서 정조는 몸소 사비로 이덕무의 문집을
간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 무릇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장 하나가 가슴속에 담겨 있는데 이는 마치 그 얼굴이 서로 닮지 않은 것과 같다.
만일 모두가 똑같기를 바란다면 인쇄되어 나온 그림이나 과거를 본 선비들의 답안지와 같을 것이니 뭐 기이할 것이
있겠는가? " ( 298쪽 )
" 바둑은 두지 않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거문고는 타지 않는 것을 신묘하게 여기며 시는 읊조리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술은 마시지 않는 것을 흥취있게 여긴다. 두지도 않고 타지도 않으며 읊조리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늘 생각해 본다 " ( 213 쪽 )
"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밀려와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기만 할 때는 그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을 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두 눈이 있고 글자를 알기에 책을 들고 마음을 위로하면 잠시
뒤에는 억눌리고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내 눈이 제아무리 다서 색깔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책에 대해서는 깜깜한 밤과 같다면 장차 어디에 마음을 쓰겠는가 " ( 250쪽 )
" 망상이 내달릴 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온갖 잡념이 단번에 사라진다. 그것은 바른 기운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정신이 좋을 때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물 한 그릇, 새 한 마리, 바위 하나, 고기 한 마리를 가만히
관찰하면, 가슴 속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 혼연히 스스로 터득되는 것이 있는 듯하다가
다시 터득한 것을 보려 하면 도리어 아득해지기도 한다" ( 258쪽 )
요즈음은 온통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접하는 뉴스들이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는데 이런 순수한 선비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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