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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 책 )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by ts_cho 2022. 11. 23.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Robert Kuttner 지음, 박형신 옮김, 한울 펴냄, 2020, 543쪽

 

평상시 항상 갖고 있었던 생각들이  " 이런 식의 자본주의는 과연 지속 가능할까 " " 민주주의는 우중 민주주의로

변질되고 있는데 다른 대안은 있는가 " " 신자유주의로 세계의 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다른 대안은 없을까 "

" 언론이 상업화되고 금융 엘리트들이 정치와 언론을 지배할 때 어떻게 하면 공정이라는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

등등- 다 일맥상통하는 주제들이지만- 인데 마침 책 제목이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주제와 관련이 되어

반가운 마음에 일독한다.

 

543쪽의 두툼한 두께의 내용을 여기 간략히 줄여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대충 정리해보면

 

민주주의는 국가을 지배하는 한편 글로벌 자본주의는 세계를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정성과 평등의 원칙을 포기해 왔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1930년대 쓰라린 대공황에서 얻은 교훈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은 금융을 제약하고 조직 노동자와 민주 정부로

권력을 적절히 이동시켜 비교적 균형 잡힌 경제 발전을 이루어 왔다. 당시에는 금융을 매우 엄격하게 규제하여

대부분 사적 영역으로 남아있던 금융을 공익사업에 가까운 것으로 변화시켜 왔는데 당시에는 은행은 대부분 본국의

국경 밖에서 사업을 할 수 없었고 환율이 고정되어 있어 통화에 대한 투기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실물경제에서 금융은 종속적이었고 따라서 금리는 낮게 유지될 수 있었고 실물 경제에 값싼 자본이

투여되어 경제는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는 무역이 더 활성화 되고 통신등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지구화되기 시작하면서 화폐,제품, 서비스, 노동의

초국적 이동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지구화는 신자유주의의 정책과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지구화는 각국 정부가 금융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켜 일시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기업 및 금융 엘리트들의

정치적 권력과 부를 회복시켜 주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대로 글로벌화된 자본주의는 점점 더 탈규제되고 국가의 제약으로부터 더욱 벗어나면서

부의 스펙트럼의 한 쪽 끝에서는 금융의 전세계적 자유화가 엘리트들에게 천문학적 부를 창출하게 해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투명성,법치,자유경쟁이라는 공동 규범 때문에 민주주의를 촉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물론 일부 이상화된 세계에서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강화시켰던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의 자본주의는

오히려 불평등을 고조시키고 민주주의를 불신하게 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업의 소득세를 인하하여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국가의 세수는 적자로 돌아서게 되고 정치가들은 본인들의 정치적 목적만을 위하여 국가의 건전 재정을

등한시 하다보니 결국은 엄청난 국채을 발행하여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국가는 지속적인 기업

감세 정책을 펴면서 공적 향상의 도구로서의 정부와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민간 금융의 후원을 받는 지구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제약을 계속해서 약화시켜왔다. 이 하향순환 속에서 약탈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해 포퓰리즘적인 극단적

민주주의가 강화되었고, 자유민주주의는 더욱 악화되었다. 민주주의가 살아남으려면 이 순환을 반대로 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훨씬 더 강력한 민주적 제도들을 갖추고 자본주의를 사회적 경제로 훨씬 더

급진적으로 변혁시킬 것이 요구된다. 

칼 마르크스( K.Marx)의 정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자본주의 비판가들은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모순에 의해 파멸되게

되어 있다고 오랫 동안 주장해 왔다. 반면 폴라니( K. Polany)는 케인즈(Keynes)와 함께 올바른 민주적 동원과

올바른 정책 개입을 전제로 하여 혼합경제가 적응하고 번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희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 실현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기업 엘리트들과 금융 엘리트들이 국가기구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명목상의 중도좌파 정당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광범위한 공적 향상의 도구로서의 정부와 정치는 신뢰를 잃었다. 우파 민족주의적 포풀리즘과

네오파시즘이 이 공백을 메워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새로운 21세기의 혼합경제 버전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그 버전의 정책 아이디어들은

그 자체로 실용적이어야 하고 광범위한 지지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

엘리트 (특히 금융 엘리트 )의 권력을 억제해야하고 서민의 권력을 회복해야하고, 시장 임금에 의존하지 않는

'탈상품화된' 형태의 사회적 소득의 영역을 넓혀야  하고 자유방임주의의 실패와 관련한 항구적인 교훈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각국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연대와 공동 목적의 이데올로기를 재건해야하고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공간을 되찾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루즈벨트 시대와 전후 시대의 위대한 진보적 유산이 바로

그러한 일을 했는데 새로운 버전의 시회적 경제는 지난 버전보다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훨씬 더 잘

방어할 필요가 있다.

 

대충 이 정도의 내용인데 이 책에서는 여러가지 사례들과 또 대안 정책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기술하는 것은 그만 하기로 하고 사실 지금 시대에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규칙을 제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규칙을 제정하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천문학적인 기업 부정을 저질렀던 기업의 오너들은 경제를 살린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그 죄를 감면받고

일반 노동자들은 여러가지 방법들로 그 권리를 제약받고 있고 것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부의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있다보니 이념의 양극화까지 덩달아 심화되고 있지만 기득권층은 이런 저런

교묘한 명목으로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데 대중은 점차 우중화 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수선이 필요하다는 점.

정말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쇠퇴를 역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문득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생각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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