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23. 232쪽
인터넷 교보문고를 뒤적이다가 만나게 된 책인데 이 책은 예술분야에 박학다식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교수가 추천한 산문집이다.
( 김영민 교수의 책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느 것' 그리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는 4-5 년전에 읽고 이 블로그에 몇 줄 쓴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929년 일본에서 태어나서 영문학을 전공한 여자분인데
프랑스에 2년간 유학, 다시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이태리 밀라노에 가서
10여년 동안 거주하며 현지 이태리인과 결혼하여 코르시아 서점 운영에
참여하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 당시의 추억을 수필 형식으로
기록한게 이 책이다.
1960년대 밀라노에서 시인인 다비드 투롤드라는 캐톨릭 신부가 새로운 사회와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면서 오픈했던 서점을 중심으로 모인 여러 사람들, 그리고 그 서점에서
책에 관한 일들- 판매, 번역 등등- 말고 또 '사랑의 미사'라는 자원 봉사 활동을 만들어서
생활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을 상담해 주는 일까지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도대체 나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이태리 사람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여서 이게 뭐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책의
내용에 푹 빠졌다.
화려하지 않고 담백한 작가의 글솜씨로 마치 내가 그 장소에서 같이 경험하는 것처럼
공감하게 해주고 또 등장 인물들의 성격 묘사등이 정말 탁월하여 제대로 된
좋은 산문집을 읽었다는 뿌듯함이 있다.
현역시절 밀라노에 거래처가 있어 몇 번 방문하여 도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 기억은
있으나 그게 벌써 40여년전의 일이니 까마득한데 작가가 밀라노의 여기 저기 언급하며
전개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막연히 그 때 추억도 회상해 보기도 한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일본의 문학은- 사실 일본 문학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는 없으니 감히 일본 문학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아무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처럼 담백함이
일본 음식에서 느끼는 그런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받는다.
어울리지도 않는 형용사나 부사를 자제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문장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품격이 돋보이는 따뜻한 내용들도 매우 인상적이라서 이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역을 떠난지도 오래되어 자연스레 두뇌 활동도 별로 하지도 않아서인지
요즈음은 머리 속에는 있지만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 글을 쓰려면 애을 먹는데
제대로 이 책 내용을 쓴 출판사의 서평 중 일부을 여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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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과 학문적 호기심을 안고 파리, 뒤이어 로마로 향한
스가 아쓰코에게 이번에는 이국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여러 고민이 닥친다.
경제적 곤란부터 종교와 문화의 차이, 이론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서구식 개인주의 등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뒤엎는 격랑 속에서 그녀는 여성으로서, 외국인으로서 혼자 힘으로
설 자리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앙에 기초한 사회개혁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에 감명받아 밀라노로 건너간 뒤, 당시 가톨릭 학생운동의 활동 거점이었던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과 운명 같은 연을 맺는다.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에는 주위에서 이들을 떠받치는 커다란 우정의 고리가 있었다.
오후 여섯시가 지나면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차례차례 서점으로 찾아왔다.
작가, 시인, 신문기자, 변호사, 대학교수, 고등학교 선생, 성직자 등. 그중에는 가톨릭 사제도,
프랑코의 압정을 피해 밀라노로 망명한 카탈루냐 수도승도, 왈도파 프로테스탄트 목사도,
유대교 랍비도 있었다.(「은빛 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인 코르시아 서점의 일원으로 청춘의
한 자락을 보내며, 스가 아쓰코는 비로소 밀라노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고 국적을 넘어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난다. 비록 교회 당국의 탄압과 내부 분열로
코르시아 서점이 문을 닫고, 서점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페피노와의 결혼생활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오 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 십삼 년간의 밀라노 생활은 스가 아쓰코에게
‘지울 수 없는 궤적’을 남겼으며 귀국 후에도 꾸준히 학문과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문학적 자양분을 안겨주었다. 상실과 좌절의 경험 역시 귀중한 자산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예순이 넘어 정식으로 등단했을 당시 ‘이미 완성된 작가’라는 평을 들은 것은,
언젠가 글로 쓰이기를 기다리던 기억과 사색의 문장들이 오랜 침묵 속에서 무르익어갔던
덕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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