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금세기 위대한 전쟁소설이라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을 받은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을 읽다.
16개국 언어로 번역 소개되어 국제 무대에 널리 알려진 이 소설은
일반적인 전쟁소설을 넘어서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감정, 눈부시게
아픈 순정 사랑을 격조 높게 그리고 있다고 평을 받는다.
종래의 베트남 전쟁 문학은 조국 통일과 민족 해방의 영광, 구국의 의지,
집단을 위한 개인적의 영웅적이고 숭고한 희생을 노래하는 것이 전부였으나
이 소설은 전쟁에 대한 어떤 미화도 없이 전쟁의 한없이 추한 모습들과
안타깝고 끔찍하고 잔인한 그리고 가끔은 따듯했던 전쟁이 어린 연인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 냉정하고 격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베트남에서 발간과 동시에 많은 찬사와 함께 비난을 동시에
받은 소설로 제국주의 전쟁을 합리화 시켜준다는 비난과 함께 한동안
베트남에서 사라졌다가 2011년 베트남에서 다시 최고의 소설로 인정되면서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오닌( Bao Ninh )은 1952년생으로, 17세에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전쟁에
투입되어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으며 베트남 마지막 작전이었던 떤 선 녓
국제공항 전투에서 남베트남의 공수부대와의 치열한 최후 교전 끝에 살아 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해서 단 두 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전사자 유해 발굴단에 참여하여 8개월간 베트남 산하에
버려진 수많은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한 다음 전역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 하노이로 돌아와서 식량밀거래를 하는 전역병들과
몰려 다니는 황폐한 생활을 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소설은 누구보다 치열한 전쟁을 경험한 작가가 전쟁터에서 보고
느낀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누구보다도 리얼하게 그려 내고 있다.
정의? 휴머니즘? 그는 전쟁에 대한 어떤 의미도 부여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글 중에 “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구 있고, 상처는 아물고,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라고 쓰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작가들의 글들이나 또 서구 작가들의 글을 한동안
열심히 읽었었다. 그 중 기억 나는 것들- 머나먼 쏭바강, 하얀 전쟁, 그리고
10,000일의 전쟁, 호치민 평전 등등-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침략자편에서
쓴 글들보다는 실제 전쟁의 상처를 겪은 베트남 인들의 입장에서 쓴 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읽었던 책들이 “Last Night I dreamed of peace”, “끝없는
벌판”. “그대 살아있다면” 그리고 “하얀 아오자이”등이 있는데 이번에 읽은
이 소설 또한 나에게 주는 느낌은 그들이 너무나 긴 전쟁의 시간을 겪어서인지
왠지 허무적이고 체념적인 냄새가 난다.
사실이 그럴 것이다. 그 지루한 치열한 끝이 없을 것 같은 전쟁을 겪다 보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인간에 대한 어떤 단순한 증오나 연민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광기를 보면서 느끼는 허무한 감정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베트남 근무 시절 만나봤던 사람들- 파트너회사의 톱 매니지먼트들- 저자와
나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그 이후 세대들에게서
느꼈던 감정들이 교차하며 그 치열한 전쟁을 겪은 후에 그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아 들었던 의식-뭔가 그들 속에 있는 죽음을 의식하지만 그렇다고
연연해 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
저자와 함께 단 두 명만 살아 남았다는 탄손놋 공항 (지금의 호치민 국제공항)
전투를 생각해본다.. 아직도 남아 있지만 탄손놋공항에는 당시 미군 전투기들을
위한 지상 격납고가 흉물스럽게 여기저기 그대로 있다.
처음에 보았을 때 그것들이 무엇인가 궁금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을까 그 공항의 모습들과 함께 상상도 해본다.
전쟁은 인간을 황폐하게 한다. 승자도 또 패자도…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수많은 미군병사들이 다시 정상생활을 못하고 마리화나 등에
의지하며 황폐하게 부서진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사례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베트남 전쟁하면 영화를 통해 떠오르는 장면들- 열대의 정글 속을 수색하는
병사들, 아오자이 여인들, 수많은 자전거의 행렬, 치누쿠헬기의 육중한
굉음, M16 연발 총소리 등등…
이제 시간이 흘러 서서히 베트남 전쟁은 잊혀져 가고 이제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은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베트남은 새로운 기회의 땅, 국제결혼, 그리고 값 싼
관광 등등으로만 기억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는 전쟁이 끊임이 없다..우리는 그런 전쟁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특히 국제적인 일에 대해서 유난히 관심이 없고 국내적인
뉴스들- 허접한 정치가들의 얘기나 연예계 얘기, 스포츠 스타들 얘기 등등에만
관심을 기지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
또 그 가운데서 고통 받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심지어는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인명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극우들의 주장들을 볼 때 마다 그 가운데서 그냥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죄 없는 삶들을 대하는 그들의 가벼움이
나를 씁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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