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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피로사회-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진단

by ts_cho 2014. 4. 25.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단 !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오래 전에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알게 된 책으로 한번

읽어 봐야지 했지만 잊어버리고 있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다.

책은 문고판으로 80여 쪽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으로 되어 있다.

그 동안 현대를 진단하는 많은 철학, 문명비판 서적 등을 읽어 보았으나

그래도 어딘가 좀 미진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이 책은 정확하게 지금

현대사회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파악하고 있어 읽어 가면서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한병철교수가 썼으며

2010년 이 책으로 인하여 독일에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가장 주목 받는

문하비평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2010년 출간되자 마자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2주 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철학책으로서는 정말 드문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계속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책의 요약적인 결론은 서문에 간단히 기술되어 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우리 시대의 소진 증후군,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등과 같은

정신 질환은 오늘날 성과사회의 결과물로서 성과사회의 주체가 스스로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자기 착취는 신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

저자가 진단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더 이상 외부의

세계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는 것이다.

작금 현대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병리학적 상황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고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이제는 개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되어 수많은 경쟁과 비교 속에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끝없는 성과주의의 덫에 빠져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하며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래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가만히 조용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과잉주의에

몸을 맡겨 수많은 과업, 정보 처리 속에 사색적인 삶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며 평온의 결핍으로 인한 과잉활동 속에서 오히려 일시적인 안도의

숨을 쉬게 되나 궁극적으로는 활동과잉으로 인하여 정신적 탈진 상태에

이르고 만다.

 

사실 지금의 세계는 수많은 정보 속에 한시도 현대인을 여유 있게 놔두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가운데 바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뭔가 자기는

현대 사회와 발 맞추어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일과가 끝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이라는 안식처로 빨리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며 또 가정으로 돌아와도 혼자 스스로의 고독을

두려워하여 티브이 앞에 인터넷 앞에 자신을 맡기고 잠시도 휴식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의 예리한 지적대로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은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강요하며 가해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현대인은 혼자 있는 것에 막연한 공포를 느껴-

사실은 인간 실존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잠시도

자신을 놔두지 않고 과잉 질서 속으로 던지면서 일종의 위안을 얻게 되나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수많은 신경 질환을 야기하게 되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아의 잉여와 반복에서 오는 이런 분열적 피로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공동체까지 파괴시키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제이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창조적인 심심함으로써 사실 반복적인

바쁨 속에서는 아무런 창조적인 일이 일어날 수 없고 단지 육체와 정신만

고갈 시키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로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 침잠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보다

창조적인 삶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현대의 삶이 이미 물질문명이 지배하에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미 어쩌면 충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본능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더 많은 물질문명의 편이를 추구하고 한편 정신문명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것이 지금 우리 현대인의 모습들이 아닌가.

 

하루 생계에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바쁜 현대사회의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어쩌면 사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얘기 같으나 생각해보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딘가 쫓기는 듯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라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

 

2010년에 이 책이 발간되고 한교수가 귀국하여 도올 김용옥교수와 간단한

인터뷰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있어 여기 옮긴다.

도올 김용옥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으나 나 같은 경우는 도올의 해박한

지식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소화시키기 나름이라는

생각이다. 근데 인터뷰한 대화를 좀 더 세련되게 기록했으면 좋았으텐데

그냥 막 기록해버린 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두 석학이 마치 자기 잘난체하는 듯한

느낌도 없지는 않은데 남의 대화를 기록해서 옮길 때에는 항상 사려 깊게 조심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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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53)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의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가 요즘 화제다. 너나없이 달려가는 ‘성공시대’의 강박증과 부작용을 성찰한 책이다. 한 교수가 최근 도올 김용옥(64) 원광대 석좌교수를 방문했다. 두 철학자는 동·서양의 사유를 넘나들며 현대사회의 안팎을 진단했다.

 한 교수는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나왔다. 도올이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고려대 교수로 부임하던 1982년 당시 학부를 마치고 좀 더 큰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30년간 국내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독일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없었다. 언론과 책을 통해 도올을 접했던 한 교수가 이번 책이 국내 번역된 것을 계기로 도올을 찾게 됐다.

 『피로사회』는 독일에서 2010년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철학자는 만나자마자 ‘사소한 대화’는 생략하고 곧바로 철학담론으로 들어갔다. 인사하러 간 자리가 예정에 없던 철학대담으로 이어졌다.

 한병철=안녕하세요.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제 책을 갖고 인사차 왔습니다.

 김용옥=독일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요.

 한=페터 슬로터다이크라고 독일에서 유명한 철학자가 총장인 대학교에서 가르칩니다. 슬로터다이크는 ‘독일의 김용옥’이라고 할 수 있지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강의 한 번 하면 3000명씩 모이는 등 독일 사회를 굉장히 자극하는 사람이에요. 도올 선생님은 동양사상을 서양에 알리는 노력을 하지 않으십니까.

 김=한 교수가 독일어로 『피로사회』같은 책을 쓴다는 건 독일 정신세계(German mind)로 들어가서 독일인으로서 써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야 독일 사람한테 읽히지, 나는 『논어』 『대학』 『중용』 『효경』 같은 동방 고전 한글번역 시리즈를 내고 있어요. 『맹자 한글역주』가 곧 나옵니다. 그런데 내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면 독일 사람들이 못 읽어요.

 한=독일어 잘하는 사람이 번역해도 못 읽을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동양사상을 서양에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양철학 얘기를 하지 않는 겁니다. 서양의 언어로 서양과 다른 사유의 상황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피로사회』를 쓰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피로사회』에서 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 없는 것의 쓸모)이에요. 장자 얘기 안하고 서양작가들 이야기 하면서 결국 장자의 ‘무위’(無爲·함이 없음)나 ‘무용지용’의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김=그게 유일한 통로일 거요. 한 교수는 독일어 속에 살고 있고, 나는 한국어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한=동양철학의 번역서를 서양인은 그들 방식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하이데거가 『도덕경』을 번역한 게 있는데 노자의 ‘Tao(·길)를 기독교의 ‘신’으로 연결시켜요.

 김=『도덕경』에 ‘도를 도라고 말하면 상도(常道)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조차 상도(常道)를 ‘영원한 도’(Eternal Tao)라고 번역해요. 영원불변이란 개념은 전통적 동양 사유와는 거리가 멉니다. 동양인에게 모든 도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거든. 시간 속에서 항상스러운 도, 항상 시간과 더불어 가는 도라는 의미지요. 이런 얘기를 내가 평생 했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 걸 보면 오늘의 한국인과 한국말이 얼마나 서양화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저는 하이데거 연구로 박사학위를, 데리다 연구로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한 서양철학자이고 15권 정도의 책을 독일에서 펴냈지만 늘 동양적 사유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김=동서양을 떠나서 인류의 가장 큰 과제상황은 막스 베버가 이야기했듯이 초월적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겁니다. 희랍 사람들이 하는 대화라는 것도 거의 신화를 빌려서 하는 것 뿐이지요. 근데 공자, 맹자 이런 것은 신화가 아니란 말이야. 아주 리얼한 역사적 상황일 뿐이지. 적나라한 인간의 이야기지요. 이데아적 전제가 없어요.

 한=서양철학을 보면 현대까지 와서도 신화를 극복 못해요. 서양의 포스트 모던, 해체주의조차도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김=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피로(Fatigue)’ 개념을 접해본 적 있어요.

 한=어느 책에서 피로를 이야기 합니까.

 김=『이성의 기능』에서 화이트헤드는 이성을 서양 전통의 기하학적 이성이 아니라 넓은 생물학적 의미로 다시 정의합니다. 인간이 더 잘살기 위해서 하는 노력은 다 이성적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에게서 이성의 반대 개념이 피로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이성이란 것은 삶의 엔트로피를 줄여주는 생명의 약동같은 겁니다. 그와 반대 방향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이 피로라고 본 거죠.

 한=우리 사회가 이성적 사회가 아니라 피로를 생산하는 사회라는 게 제가 『피로사회』에서 하려는 말인데,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성과사회’라고도 규정하는데, 성과사회는 삶을 좋게 가꿔나가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과만 많이 내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지요. 지난 세기 인간을 착취하는 힘은 타인의 강제와 규율이었지만, 현대사회는 자기가 자신을 착취하는 사회로 변했다고 봅니다. 우울증은 성과사회의 질병입니다.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 시대의 질병을 극복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김=한 교수의 파워는 서양 속에서 서양의 언어로 동양철학의 의미를 해석한 데 있을 겁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하이데거를 뛰어넘는 대가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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