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전에 교보문고 싸이트에서 볼만한 책이 뭐 있나 찾아보다가 우연히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사서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참전에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중국영화 "인생" 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주저없이 구매하여 읽어 본다.
"인생"이란 영화의 원작을 아직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물론 뛰어난 소설이었던 것은 틀림없고 더우기 장레모감독의
솜씨로 만들어진 영화 장면이 영화를 본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눈에 선하다.
책을 단숨에 읽다.
스토리의 구성도 구성이지만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를 적절하게 엮어가면서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주제를
끌고 나가는 글솜씨가 가히 세계적인 작가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중국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어도 아직 왜 이 작가를 몰랐었던가싶고...
이 소설의 스토리야 인터넷 여기 저기 카페나 불로그에 잘 써있으니 새삼 여기에 다시 쓸 필요는 없고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두서 없는 생각들...
첫째, 이 소설을 배경으로 만든 한국영화가 상영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정우 주연에 그래도 이름께나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Youtube에서 소위 영화 선전하는 trailer(예고편)를 보고 정말 이건 아니다싶다.
우선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중국적 정서와는 전혀 다른 한국배경으로 만든것도 극히 어색하고
또한 소설에서 나오는 만두니 국수등 여러 중국 음식이 의미하는 그 배경들이나 더우기 문화혁명까지...
예고편에서는 문화혁명을 어떤 한국버젼으로 바꾸어 놓았는지는 나오지 않아 모르겠지만 문화혁명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은 한국판으로는 도저히 탈바꿈이 불가능할텐데...
그 예고편을 보면서 이것을 장레모감독이 중국에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으니 어떻게해서 이런 정말
중국적인 정서를 한국영화로 만들려는 무모한 생각들을 했나 극히 의아스럽다.
그동안 보았던 문화혁명이 배경이 되었던 몇 가지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5일의 마중""인생""패왕별희"등등
중국적인 소설에 한복을 입혀 놓은 우스꽝스러운 영화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보지 못하고 불과 몇분간의 예고편만 보고 얘기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둘째,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가끔은 전혀 우리가 이해 못할 중국인들의 정서..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시대의 흐름속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하고 그러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쩌면 체념 어쩌면 일종의 극복이라고나 할 수 있는 그들 만의 정서를 현역 시절 중국과 비지니스
하면서 가끔씩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중경에서 무슨 2박3일의 세미나가 있어 당시 중국업체에 납품하던 전기관련 소재
제조업체 대표로서 주제 발표차 참석한 적이 있었다.
중국 전역에서 백여명의 관련업체 사장들이 참석하는 모임이었는데 마지막날 하루는 관광 스케줄이 잡혀 있어 내심
기대를 하고 아침 일찍 주최측에서 마련한 관광버스에 탑승 출발했는데 오전 내내 달려서 점심즈음에 어떤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 마을이 당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의 할아버지가 한 때 살았던 장소라는데
그리고 후진타오는 그 곳에서 태어나지도 산 적도 없는 내 눈에는 뭐 특별히 볼 것도 없는 기와집 몇 채 있는
지극히 평범한 마을이었다. 그래도 잠시 돌아 보고 그 동네에서 점심 먹고 다시 중경에 있는 호텔로
돌아 오니 한 밤중....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같이 갔던 중국 사람들 누구 하나 불평없이 묵묵히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워낙 대륙이다보니 하루 종일 차 타고 다니는 것도 그들에게는 그리 큰 사건이 아니었던 모양이고 또 이 소설에도
나오지만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법처럼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지던 지도자가
마치 성인처럼 받들어 지던 그 정서가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중국인들의 피 속에는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 이외도 그들과 비지니스 하면서 너무 이해 못할 그들만의 정서에 많이 어이없어 했던 기억도 있는데
그런 중국의 정서가 이 소설에 잘 표현되고 있는데 이걸 한복을 입힌 영화로 만들다니...
셋째, 1971년 고등학교 3학년 말기에 갑작스럽게 복막염으로 서대문에 있던 적십자병원에서 한달이상 입원한 적이
있었다. 막 대입을 앞둔 중요한 시간에 그런 일이 생겨 그 이후 내 인생이 원래 목표로 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지금도 그 자리에 적십자병원이 있고 지금은 재벌들이 운영하는 대형병원들의 위세에 밀려 초라한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알아주는 병원이었는데 병원 한 쪽에 적십자 혈액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아침에 병원 창밖으로보면 혈액원 양지 바른 곳에 많은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매혈을 끝내고 혈액원에서
주던 크림이 들어있는 삼립빵을 하나씩 입에 물고 걸어 나가던 그 장면이 새삼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선하다.
그 때는 우리도 힘든 시절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팔아 생계를 이어 가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소설을 읽을 때 특히 재미 있는 것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그것을 써내려가는 작가 고유의 문체나 구성인데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소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단연코 후자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어 가면서 작가의 글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게 문학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리라.
이 작가의 또 다른 장편 " 가랑비 속의 외침" 중단편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 내게는 이름이 없다"를 즉시
주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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