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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가랑비속의 외침(在細雨中呼喊)- 위화 장편소설

by ts_cho 2015. 7. 23.

 

 

 가랑비속의 외침, 푸른숲 발행, 2014

 

현대 중국의 대표작가인 위화의 첫 장편소설이란다.

이미 "허삼관매혈기" " 내게는 이름이 없다"라는 책에 대해서 독후감 비슷한 것을 쓴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의 얘기들을 구수하게 그리고 촌철살인의 글솜씨로 풀어내고 있는 그의

글 재주는 가히 당대최고가 이런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가랑비속의 외침..책의 제목이 글 전체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지는 않지만 곰곰히 생각해보고 나름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사 항상 가랑비와 같은 젖음이 있어도 그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는 질긴 노력의 외침?

내용은 주인공인 " 쑨광밍"의 어린 시절 파편적인 기억의 모음으로 그 이야기들이  어떤 것은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그냥 그래로 의도되지 않고 기술하고 있다.

서문에 보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라지만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의 감정과 이해가 녹아 있다고 하는데

읽으면서 아직 문명화되지 않았던 시절의 중국 어느 마을에서 여러 인간 군상들의 때뭍지 않은 어쩌면 몽매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가는 각자의 모습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풀어내고 있다.

 

과연 작가의 이 소설에서의 의도는 무엇일까..책의 전반부를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떠올랐지만

데미안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라는 생각도 들고..책을 읽는 내내 재미도 있으면서 또 한편 삶의 치열함과 비루함에

서글픈 느낌도 들고.. 아무튼 최근에 읽은 책중에서는 백미!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각자 다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면서

그 나이에 느꼈을뻔한 느낌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장예모 감독이 영화화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인생"을 보며 그 영화 제작 솜씨도 솜씨지만 그 내용이

탄탄하여 감탄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 이 글을 읽고 그 책을 꼭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구수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풀어가는 글을 읽는 것은 이미 영화를 보아 내용을 알고 있어도 또 다른 커다란

즐거움이니까..

 

마지막으로 작가의 서문에서 한 귀절.

세월은 우리의 재산을 하나 하나 빼앗아가고 마지막에는 텅 빈 두손만이 남는다. 세상사는 이미 다 잊었고

모란꽃만이 "이미 본"것도 아니라 "보이는 듯"할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사람의 육체에는 "조화"라고 하는 성질이 있어 생기를 유지해준다고 여겼다.

시인 육유(陸遊)가 슬픔과 무력함에 빠졌던 인생 말년에 본 듯도 하고 보지 못한 듯도 한 모란꽃은 우리에게

송곳같이 날카로운 희열을 안긴다. 이런것이 아마도 생기를 유지해준다는 "조화"가 아닐까?

내 생각에는 그 "조화"라는 것은 분명히 기억을 의미할 것이다. 기나긴 인생이 먼 길을 돌아 말년에 이르면

재산이나 영예는 다 부질없는 것이 된다. 그 때는 기억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남는다.

우연한 기회에 환기된 기억은 작은 모란꽃이 하듯, 끝없이 넓고 높아야 보이는 세상사를 온통 뒤덮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