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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책) 장정- 김준엽 자서전

by ts_cho 2015. 11. 12.

 

 

 

세상이 많이 변하여 이제는 이념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잘 먹고 사는 문제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쉽게 과거를 잊는다.

이런 저런 책 별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지만 가장 즐겨 읽는 장르가 자서전이다.

세상에는 쓰레기같은 자서전이 범람하고 있지만 진실하게 쓰여진 자서전 안에는 저자의 삶의 궤적 인생관 그리고 당시 상황등 감히 소설이 흉내낼 수 없는 치열한 이야기들이 쓰여져 진정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뜽금없이 세상  얘기하다가 자서전 얘기를 한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자서전중에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자서전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 김준엽선생님의

"장정" 이란 자서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사회가 시끄럽다.

누구는 그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천황에게 혈서를 써서 충성을 맹세할 때 누구는 강제로 징집된 일본군 학병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그 광할한 중국 대륙 6,000리의 "장정"을 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도착 독립군이 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도 한다.

정말 오래전에 그의 자서전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새롭다.

1948년 이승만 정부의 시작을 소위 건국일로 하여 과거 만주별판에서 치열한 독립 투쟁의 삶을 살았던 우리 선열들의 역사가

가볍게 지워지려고 하며 또 친일의 역사가 그냥 가볍게 합리화되려고 한다.

이것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그리고 종북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명예 자긍심의 문제이다.

난 내 블로그에 정치얘기는 별로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면 사람들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와는 무관한 주제인데 과거 부끄러운 역사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정치화 시켜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어 그것이 개탄스럽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이룬 경제적인 업적에 취해 이제 부끄러운 과거를 그냥 미화하려는 것도 눈 감아주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는 부끄러운대로 자랑스런 역사는 자랑스런대로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게 강한 자의 모습인데..

지금 일본이 자기들의 떳떳치 못한 과거를 미화하려는 것을 비웃는 우리가 아닌가...

평생을 정말 떳떳하게 살아 가신 김준엽선생님의 자서전을 문득 다시 읽어 보고 싶다.

 

김준엽선생님의 일생을 간단히 기술한 김삼웅교수의 글을 옮긴다.

 

학병 탈출 제1호, 6천리 장정, 한국광복군, 독립운동가, 중국연구가, <사상계> 동인,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의 개척자, 군사정권에 맞선 대학총장, 총리직을 고사한 고고한 선비학자, 해외 한국학 진흥의 개척자, 현행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법통계승’을 명시한 선각자, ‘지식의 저수지’….

김준엽(金俊燁,1920~2011) 선생은 파란격동기 한국현대사의 ‘시대정신’이다. 그것도 사대와 변통과 강압 쪽이 아니라, 자주와 정통과 민주의 ‘시대정신 구현자’이다.

20대의 식민지시대에는 일본군을 탈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 한국광복군이 되고, 일제가 패망하면서 모두 ‘금의환향’할 때 중국에 남아 대륙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고, 30~40대 대만과 미국에서 학자로서의 전공을 쌓고 <사상계>에 참여하여 장준하 선생과 더불어 민주주의 이념과 반독재의 논객이 되고, 30~60대에는 대학에서 학문 연구와 실천의 교수ㆍ총장이 되었다. 

그의 생애는 온통 부조리와 반지성의 시대와 겹친다. 일제말기와 이승만의 독재로부터 시작하여 짧은 4ㆍ19공간을 제외하면 한 세대가 넘은 군사독재 시기였다. 건전한 상식과 지성이 통하지 않았고, 시류에 좇아 영혼이 없는 학자ㆍ언론인들이 판치는 시대였다. 이같은 시대상황에서 자유ㆍ정의ㆍ진리의 길을 택하고 연구하고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려대학총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전두환 정권의 폭정에 맞서다 쫒겨나고, 뒷조사를 당했으나 한 줌 먼지도 나올 리 없었다. 부패한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염색하고자 하얀 모시옷 같은 그를 탐냈으나 권력과는 오래 전부터 담을 쌓고 살아왔다. 하여 응하지 않고 평생 야인의 길 걸었다.

그렇다고 순수학문에만 집착한 것이 아니었다. 유엔총회 한국대표,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지도위원, 독립기념관건립추진 이사 등 국가ㆍ민족사 관련에는 기꺼히 참여하고, 대학을 정년퇴임한 후에는 재단법인 사회과학원을 설립하여 학자들의 연구기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계간 사상>을 창간하여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수준 높은 교양학술지를 발행하였다. 

그가 1957년 설립한 고려대아시아문제연구소는 ‘세계10대연구소’에 꼽히게 되고, 1955년 ‘멸균실’ 수준의 냉전시기에 ‘적성국가’ 중국을 연구하고자 창설한 중국학회는 한국의 중국(학)연구ㆍ발전에 토대를 마련하였다. 모두 지적 용기와 앞날을 내다보는 식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중국 한주대학ㆍ북경대학ㆍ상해복단대학ㆍ남경대학 등 10개 유명대학의 명예교수로 초빙될 수 있었다.

1958년에 간행한 <중국공산당사>를 시작으로 오직 철저한 고증과 실증위주로 김창순과 공동 집필한 5권짜리 <한국공산주의운동사>는 여전히 이 분야의 독보성을 유지한다. 그가 존경했던 몽양 여운형이 1920년 한국인 처음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당선언>을 번역했데서 용공ㆍ좌경으로 몰린 것을 알고 있었던 사실로 보아, 공산주의연구와 각종 저서는 지적 용기가 남달랐던 학자였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 출신답게 통일문제와 북한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여서 <북한연구자료집> 제9집까지, 그리고 <남북통일문제와 그 주변>, <북한의 오늘과 내일>등 역저를 펴냈다. 하나같이 그 시절에 아무나 덤비기 어려운 노작들이었다. 

김준엽 선생은 학문 분야 이외에서도 민족사의 곳곳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어느 정치인, 관리, 학자보다 큰 업적이었다. 

1) 상해와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보존과 복원에 앞장섰다.
2) 1987년 헌법개정 당시 정부와 여야당에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明記)케 하였다.
3) 1993년 김영삼 정부에 건의하여 상해 만국공묘에 있던 임정요인 5위(박은식ㆍ신규식ㆍ노백린ㆍ전인전ㆍ안태국)의 유해를 환국시켰다.
4)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구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일제잔재를 청산하는데 기여하였다.
5) 중국 각지에 산재한 한국관련 유적지에 기념비를 건립케 하였다. 상해 홍구공원에 있는 윤봉길의거 기념비의 규모확장, 영파시에 있는 고려사관의 복원, 산동 교주시에 있는 고려정관 기념비 건립, 강소성 양주시에 있는 최치원 기념비 건립 등이다.
6) 중국의 8개 명문대학에 한국연구소를 설립하는데 협력하여 한국연구와 한ㆍ중 친선에 노력하였다. 

김준엽 선생은 해방된 조국이 분단되고 긴 세월 전혀 민족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는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평화적인 남북통일과 균형 잡힌 독립운동사 서술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후반의 생애를 바쳤다.

평생의 동지 장준하 선생이 ‘투사형 지식인’이라면 김준엽 선생은 ‘지식인형 투사’였다. 이들의 생애는 민족사의 정체성이 담기고, 역사의 무게가 실렸다. 그리고 독립운동사의 숨결이 박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