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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s)

(책) 백석 평전

by ts_cho 2016. 9. 8.


                   백석평전, 안도현 지음, 다실책방 간, 2016


나는 사실 백석 시인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국내에 없었고 가끔 한국에 업무차 왔다갔다 하면서 교보에 들려 책을 사서 보다보니

학창시절에 알지 못했던 시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었다.

단지 신문에서 읽은 기사들..대원각이라는 요정 주인 마담이 7,000평이나 되는 대단한 재산을 전부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그 요정이 길상사라는 절로 바뀌었고 그 주인 마담 이름이 자야(子夜)인데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다는

그리고 남들이 그 엄청난 재산을 시주한 것이 아깝지않나고 물어볼 때마다 이 재산은 백석의 시 한 귀절만도

못하다는 얘기를 했다는 흥미있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있지만 그의 시를 특별히 읽어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최근에 티브이 무슨 프로에서 상당히 내공이 있어 신뢰성이 있는 어느 비평가가 한국의 시는

백석 이전과 백석 이후로 나누고 싶다는 극찬을 듣고 새삼 흥미가 생겨 그의 시를 찾아 읽어보다보니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평전"이 있어 읽어본다.

꽤나 두툼한 책이다. 전체 454쪽이나 되니.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의 중고등 국어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시인이 김수영과 백석이란다.

정말 뜻밖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도 학창 시절 김수영의 시를 많이 좋아해서 그의 시집을 갖고 다니기도 했지만

문학성은 차치하고 어쩌면 우울한 허무가 진하게 깔려 있는 그의 시를 교과서에 많이 수록했다니

그리고 월북한 백석 시인의 시까지...나의 학창시절에는 워낙 반공이 국시이다보니 월북 작가들의 글이나

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이데올로기를 어느 정도는 예술분야에서는 극복한 것 같아

반가운 일이다.


백석이 지야에게 주었다는 그 유명한 시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그렇고 대부분 그의 시는 시인이 의도적으로

우리 말 우리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일제시대에도 정말 그 당시 쉽지 않은 일이 었지만 한 줄도 일본말로

시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시인의  우리 민족과 한글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자기가 진정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을 하지 못하고 방황헀던 영혼, 월북해서도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하고 결국은

오지로 유배되어 쓸쓸히 한 평생을 마쳐야헸던 시인의 일생을 진지하게 잘 기록하고 있어 두꺼운 책을 읽는데도

지루함이 별로 없이 잘 읽힌다..

평전 여기 저기 배경 설명과 함께 수록된 그의 시를 읽은 개인적인 느낌은 당시 주류이었던 영탄적 감상주의적

소월류의 감성를 넘어선 그렇지만 소위 모더니즘류의 말재주를 부리지 않은 담백한 절제된 시인의 깊은 사색이

드러나는 그래서  앞에서 얘기한대로 그 비평가가 한국의 시단에서 백석 전과 후라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있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 책에서 비교적 자세히 밝히고 있는 일제 시대의 문인들의 변절 이야기, 그리고 백석 시인이 월북이후 오지에

유배되어 썼던 시를 비롯하여 이데올로기가 문학을 오염시킨 기록들을 읽다보니 일제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해방이후

남북이 나뉘면서 문인들의 갈등과 반목등등...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 가 없다.

그런데도 아직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로 친일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고 또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어 아직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반복하는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은 언제쯤 다 극복할 수 있을것인가하는 무거운 생각이

책의 후반부를읽는 내내  마음을 짓누른다.



그의 시중에서 절창이라는 시 한편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