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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write and draw to empty my mind and to fill my heart ..
책(Books)

(책) 라면을 끓이며- 김훈 산문집

by ts_cho 2017. 11. 5.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 2017


한밤중에 자주 잠에서 깨어난다. 잡생각이 머리속을 휘젓기도 하고 건강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것은 이미 현역시절부터 오래전부터의 일이니 별로 개의치 않지만 그래도 좋을리는 없다. 

잠에서 깨어나 다시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그럴 떄면 머리맡에 놓아둔 책을 읽는다.

그전에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New Earth) "를 읽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가 나를 휘둘러 내가 바라지 않는 나를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 그래서 정신줄을

놓지 말고 내속에 있는 자아를 인식하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 잠 못드는 밤 오히려 더 상념에 빠지게 한다.

흥미진진한 책은 읽지 않는다. 그런 책은 오히려 정신을 맑게하여 잘못하면 그냥 밤을 꼬박 새울 수도 있으니.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는 산지도 제법 오래되었는데 머리맡에 놔두고 자기전에 좀 읽다가 그리고 자다가 잠이 깨면

읽다보니 한참만에 끝냈다.. 

아무래도 산문들이다보니 길지도 않고  주제들도 비교적 그리 무겁지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의 글은 뻑뻑하고 사유의 폭이 깊어  잘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문장은  단문 위주이지만 그 단문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래서 한 문장을 읽으며 쉽게 밀고 나가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어떤 떄는 한쪽도 못읽고 눈이 피곤해져서 책을 덮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김훈 작가의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산문집을 정색을 하고 책상에 앉아서 정독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일전에 어떤 글에서 김훈 작가가 그동안 쓴 산문들을 다시 발췌하고 좀 더해서 이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집을 내고

이제는 다시 그런 책을 내지 않겠다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전에 읽었던 그의 산문집들-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등등의 산문집들-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 글들도 있지만 또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글은 산문이던 소설이던간에  읽으면서 느끼게되는  감정은 그저그런 평범한 민초들의 비루한 삶 그렇지만

치열한 삶을 드라이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삶의 존엄성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다가 깨어서 읽다가 또 자고 하니 책을 끝내도 내용이 별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 

물론 책을 다 읽고 기억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그렇다고 수면제로 책을 읽은 것도 아닐진데 나도 문제다.


살아가면서 상황 상황에 따라 수없이 머리속을 교차하는 생각들을 이렇게 산문의 형식으로 글을 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잠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를 해서 글다운 글을 만들 수 있는게 작가의 역량일텐데 그 역량을 김훈 작가는 

그의 표현대로 온몸으로 밀고 나간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몸으로 느껴지는 치열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체는 별 군더더기 없이 드라이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처연하고  아름답다.


지지난주에 바닷가에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는 문장 하나..

" 밀물 떄 먼 나라의 빛들은 물에 실려서 섬으로 들어오고, 물이 빠지면 붉은 석양의 조각들이 갯벌 위에 떨어져서 

퍼덕거린다"


이제 11월이다. 아침 저녁 바람이 차다. 11월이란 제목의 산문 중 한 귀절.
" 11월은 습기가 빠진 존재의 모습을 가차없이 드러내 보인다.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것들이 11월의 들판에 가득하다.
벌레들의 죽음에서도 그런 바스락거린는 소리가 들린다. 11월은 말라가고 바래어간다. 갈대와 억새의 죽음에서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1월의 억새밭을 자전거로 달릴 때, 몸은 하찮은 몸이다. 몸은 가루처럼 바람에
날린다. 내 백골이 자전거를 저어간다. 생명은 가지런하다......"